시간은 과연 흐르고 있을까?

신간 '시간의 미궁'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단 한 가지 더더욱 미궁에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바닷가에서 잰 시간과 히말라야 고원지대에서 잰 시간은 서로 다르다. 정확한 시간은 어떻게 재야할까? 시간은 과연 흐르고 있을까? 시간은 정말 빅뱅 때 시작되었을까? 그렇다면 점점 더 팽창하고 있는 우주에서 시간은 마침내 그 끝을 맞을까?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과거 또는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신긴 '시간의 미궁'에서는 시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체적 세계와 내면 의식에 어떤 식으로 스며들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결과가 압축되어 담겨 있다. 시간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그리고 물리학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상상력은 역설적 시간을 조화시키고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와 철학

오랜 세월 인류는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아토초 단위의 시간 측정 기술과 시계 제조 기술 등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물리학계는 시간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당혹감은 철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관한 대부분의 물리학적·철학적 분석이 시간의 흐름에 대해 밝혀낸 것은 거의 없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대상이 어쩌면 이토록 정체조차 불분명할까?

◇ 인간과 시간

모든 생명체에게 시간은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몸 어딘가에서도 생체 시계가 시간을 재고 있다. 생체 시계는 뇌와 신체가 정교하게 동작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인간의 시간 감지 구조를 통해 노화와 질병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몸 안에는 '마음의 시간'도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하며 우리가 겪은 일들을 순서대로 기억하게 한다. 한편 시간에 대한 인식 또는 관념은 문화권의 사회적 우선순위와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 시간 측정 기술

시간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역사 내내 과학과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문명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해시계와 물시계 같은 초보적 시각 측정 도구로부터 원자시계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더 정확한 시간을 재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하루 오차가 수십조 분의 1 이내인 원자시계도 있다. 1초를 정확히 측정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시간의 물리학

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주가 하나의 시계에 맞춰 움직인다는 뉴턴의 이론은 19세기 후반부터 공격받기 시작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동시성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 상대성 이론으로 이 세상이 하나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목표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해 중력이 지배하는 세계와 양자 세계를 한꺼번에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을 완성하는 것인데, 양자역학에서는 시간이 모순되는 특성을 갖는 점이 커다란 장벽이었다. 양자역학에서 시간이란 기본적으로 뉴턴역학에서의 시간과 비슷하다. 통합이론을 만들려는 시도로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받아들이고 양자역학이 더 근본적인 역할을 맡는) 초끈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용도 폐기된 존재로 치부하는) 루프양자중력론이 있다.

◇ 모든 것은 상대적

시간은 상대적이다. 시간은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관측자에게는 시간이 늦게 가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 지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예컨대 하펠-키팅 실험에서처럼 원자시계를 다양한 속도로 움직이는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또한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계가 받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서도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진다.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

'시간 여행'은 공상과학소설에서 인기 있는 주제다.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속도는 시간을 앞질러 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경우 시간 지체 현상이 일어난다. 중력도 있다. 중력은 시간을 느리게 가게 만든다. 가령 중성자성 표면에서는 중력이 너무 강해 시간이 지구보다 30퍼센트 느리게 간다. 블랙홀은 시간 건너뛰기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데, 블랙홀 표면에서는 시간이 지구에 비하면 거의 정지한 상태다.

◇ 시간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오랜 세월 과학계에서 빅뱅 이전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이론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특히 끈 이론의 부상과 함께 관점이 바뀌었다. 아직 과학적인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검증 가능한 이론이 우주, 그리고 시간이 빅뱅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이 둘 중 한 이론이 옳다면 우주는 항상 존재해왔고, 언젠가 무너지더라도 절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책 속으로


정밀 시간 측정 기술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 어쩌면 정확도가 너무 높아서 다른 기기와 시각 동기(同期, syncronization)가 불가능한 지경인 원자시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 그러나 시계 제조 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물리학계는 “시간이 흘러간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1-1 현실 속의 시간)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시간이 '흐른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전류의 흐름처럼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런 척도는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간은 환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연구 주제 중 하나다. (1-1 현실 속의 시간)

시간의 흐름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오히려 시간이 그저 존재할 뿐 전혀 흘러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은 터무니없으며 시간을 강물의 흐름에 빗대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여기는 철학자들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대상이 어쩌면 이렇게 정체조차 불분명할까? 아니면 과학이 시간의 핵심 요소를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1-2 신비한 흐름)

물리 법칙은 시간이라는 변수를 포함해 만들어져 있지만 정작 시간이 무엇인지, 특히 과거와 미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보다 기본적인 법칙을 파고들수록 시간이라는 변수는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진다. (1-3 물리학의 핵심에 존재하는 허점)

새벽에 꽃잎을 활짝 펴는 나팔꽃에게도, 가을이면 남쪽으로 날아가는 거위 떼에게도, 17년을 애벌레로 사는 메뚜기에게도, 매일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에게조차도 시간은 절대적 요소다. 인간의 몸에서도 어디선가 생체 시계가 초, 분, 하루, 달, 해를 재고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상대방의 서브를 받아내는 데 필요한 몇 분의 1초의 움직임도, 비행기 여행 뒤의 시차도, 매달 여성의 호르몬 분비량이 조절되며 생리가 일어나는 것도, 감정적으로 계절을 타는 것도 모두 생체 시계의 지배를 받는다. 세포 시계는 삶이 끝나는 시간을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다 되면 죽음이 오는 것이다. (2-1 삶을 지배하는 시계)

생물학적 시간과 정신이 기억하는 마음의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심리적 시간이 하나의 어떤 신체 기관에 달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속이라든가 시간적 순서에 대한 판단이 주로(심지어 전적으로) 뇌의 정보처리 과정에 의존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2 그건 언제였을까)

시간에 대한 관념이 고무줄처럼 느슨한 문화권도 많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처럼 깐깐한 곳도 있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해당 문화권의 사회적 우선순위와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 문화권과 시간관념)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통상적 관념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시간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4-1 시간은 환상일까?)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관측자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 사건은 공간이나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조합인 시공간(時空間, spacetime)에 의해 정의된다는 의미다. (…) 시간과 공간이란 “사라져버리는 운명을 타고난” 2차적 개념일 뿐이다. (4-1 시간은 환상일까?)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깔끔해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정의하면 모든 관계를 시간에 연관지어 정의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움직임을 시간을 이용한 물리 법칙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우주라는 가구의 기본이 되는 요소라고 속아서는 안 된다. (4-1 시간은 환상일까?)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 4차원의 시공간으로 묘사한다. (…) 공간 안에서는 (중력과 물리적 장애물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건 마음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지만, 시간은 (의도적이건 아니건) 우리를 정해진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인다. 미래라는 방향으로. (4-2 시간을 미래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루프양자중력(loop quantum gravity)'이라는 다소 어색한 이름을 가진 이론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은 작은 덩어리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계산의 결과는 아주 단순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이론은 빅뱅과 블랙홀 (black hole)에 연관된 헷갈리는 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무엇보다도 실험을 통해 시공간의 원자(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면)를 감지해내는 것이 머지않아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4-3 공간과 시간의 원자)

세상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의 상수(常數, constant)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렇다. (…) 이 값들은 마치 물리학 이론의 발판과 같아서, 우주라는 옷감을 규정하는 존재와 다름없다. 물리학의 발전은 이런 상수를 보다 정확히 측정해내는 일과 함께해왔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아무도 이런 상수를 속 시원히 설명한 적이 없다는 사 실이다. (4-4 값이 변하는 상수)

"시간은 상대적이다"라는 격언이 "시간은 돈이다"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시간이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서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 있다는 개념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많은 업적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5-1 시간과 쌍둥이 패러독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계가 받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진다(고도가 높은 데 있는 시곗바늘은 지구 중심에 가까운 시계보다 빠르게 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위층에 사는 사람의 시간이 아래 층 사람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간다는 뜻이다. (5-2 시간은 어떻게 가는가)

비행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먼 거리를 이동해도 시간 지체는 (웰스의 소설에 나오는 시간 여행을 하기에는 턱도 없는) 10억 분의 1초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나 원자시계는 이 정도의 시간 지체도 측정해낸다. 그러므로 미래로의 여행은 비록 아주 먼 미래로가 아니라서 그렇지,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셈이다. (6-1 타임머신 제작법)

1920년대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멀리 떨어진 은하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 무한한 과거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우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은하가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작은 점으로 모여들어서 하나의 블랙홀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각각의 은하는 모두 크기가 0인 점으로 수축된다. 밀도, 온도, 시공간의 휨 같은 값은 무한대가 된다. 특이점은 우주의 이전(以前)이 존재할 수 없는, 궁극의 격변이 일어나는 곳인 것이다. (7-1 시간이 시작되었을 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가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시기가 닥치지 않을까?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대물리학은 그렇다고 답한다.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끝날 수 있다. 더 이상 모든 움직임이 있을 수 없고, 새로운 시작 같은 것도 없다. 시간의 끝은 모든 것의 끝이 끝남을 의미한다. (7-2 시간의 끝이 있을까?)

과학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분석해가는 힘든 여정의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서 그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시간의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위치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된다. (…) 시간의 끝은 상상이 가능하지만, 아무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의식하는 것처럼 이를 직접 경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사실 우리는 시간의 종말에 그저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해자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에너지를 열로 바꾸며 우주의 쇠락에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7-2 시간의 끝이 있을까?)

사이언티픽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236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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