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니까 용서해야 한다고?"

기독교사회윤리학자가 분석하는 이동현 목사 사건

최근 국내 유명 청소년 사역 단체 대표가 수년 간 여성 제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남성 목회자의 성범죄 사건. 도대체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5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자 백소영 교수(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독교사회윤리학자 백소영 교수는 이동현 목사 사건이 "목회자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며 "비일비재한 수많은 사건 중 하나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 최근 청소년 사역 단체 대표의 성적 타락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사실 파악을 하며 놀라기는 했다. 이번 사건은 목회자 한 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목회자 한 사람의 일은 아니다. 여대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여학생들 상담을 많이 하게 되는데 사실 청년 사역의 장에서 목회자의 지위를 이용한 성적 사건이 비일비재 하다. 그래서 이번 일도 수많은 사건 중 하나가 드러났구나 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며 경악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가슴 아프다.

▶ 교계에서 남성 목회자의 성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에 대한 원인은 무엇으로 분석하는가.
= 기독교사회학 전공자로서 한국교회 교계를 분석해보면 '목사'라는 직책에 상당한 권위가 몰려있음을 발견한다. 스승, 남자, 부모가 갖는 권력이 중첩되는 직책이다. 대한민국 교회에서 목회자는 남자이자 스승이고 또 영적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이와 같이 목사에게 과다한 권위가 집중되다 보니 설교 메시지뿐만 아니라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똑같은 힘(영향력)이 작용한다고 본다.

이번 사건은 청소년 문제로 붉어졌지만 내가 상담을 하는 4-50대 여신도들도 목회자가 이런 식으로 사적인 접근, 특히 성적 접근을 해왔을 때 이성적으로 판단을 못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목사님이신데', '영적 아버지이신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피해에 노출되기가 쉬운 것 같다.

▶목회자의 성적 범죄가 하루 빨리 교계에서 근절되어야 할 텐데 대안은 무엇인가.
= 우선 개인적인 해결책은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주체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 인상적인 것은 목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니 꼭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피해 학생이 당당하게 반격을 하자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상담을 해온 여학생들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격을 했을 때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많이 봤다. 가해자들이 대체로 자리를 잃고 싶은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가 사적으로 숨어있으면 지속이 되는데 피해자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자기주장을 하게 됐을 때 그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 아무래도 교계에선 목회자를 존경 또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편적이라, 목회자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는 같다.
= 목회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존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대는 끝났다. 자리가 주는 권위는 전근대사회의 권위이다. 목사는 항시 거룩한(마치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가 아니다. 신학 전공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종교적 전문가이지 존재론적으로 구별된 존재는 아니다.


요즘 사회는 법의 지배에 근거한 정당성이 판단 기준이다.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시민권을 보장받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질타 받고 자리를 잃는다. 법이 권위를 갖는 것은 이미 세상에서도 정립되어가는 법칙이다. 하물며 기독교인은 더 엄중한 상위법, 즉 성서에 기록된 '여호와의 규례'가 있다. 이 법 앞에서는 목회자나 평신도나 동일하다. 수직적 위계가 있지 않다. 목회자의 경우, 그 또는 그녀가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니까 자연스럽게 존경이 가는 것이다

심지어 연령이 높은 남성 평신도들도 목회자가 불합리한 이야기를 해도 '목사님 말씀이니깐'이라며 순종을 하는 경우도 더러 본다. 그런데 목회자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은 아니다. 이를 지혜롭고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독교사회윤리학자 백소영 교수는 "공동체에서 한 명이 희생하면 우리 공동체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 그런데 실상 교회 공동체가 피해자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등 성 문제를 덮고 가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어떤 공동체든 공동체성이 강할 경우 내부자라는 원리와 연대의식이 강하게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공동체를 해체하고자 하는 사건들이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건의 옳고 그름보다는 공동체에 해를 끼치느냐 안 끼치느냐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 원리가 작용해 사람들이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 동조하기보다는 사건을 덮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한 명이 희생하면 우리 공동체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현재 교계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주장을 크게 외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그런 경우, 피해자가 오히려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억눌림 당하고 역공격을 당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연대를 할 수 있는 교회·시민 단체 등을 찾아가라고 권유하고 싶다. 무엇보다 내부고발자라는 죄책감을 버리면 좋겠다.

▶ 교회나 교단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교육이 중요하다. 그동안 교회가 성을 중요한 주제로 여겨오지 않았다. 오히려 성의 문제를 무조건 외면하고 죄악시하다 보니 왜곡된 성의 개념을 갖게 되고 성인이 되어 병적으로 발현되기 쉽다. 오히려 교회는 성 문제를 공공의 장으로 끌고 와야 한다. 어떤 것이 올바른 성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적 관계는 무엇인지 등, 성에 관한 이슈들을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건전한 성인식과 행동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자기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회자의 영적 권위와 남녀 문제는 별도의 영역이다. 아무리 목회자라도 본인이 부당하다고 생각되고 불편하다면 '아니요'라고 말 할 수 있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또 교단차원에서 성 문제와 관련한 교회법이 세워져야 한다. 지금은 제도적 제제 장치가 거의 없다. 교회법이 제대로 세워진다면 목회자들이 사적 공간에 숨어서 권위로 여신도를 위협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 끝으로, 이런 성추행·성범죄 전력이 있는 목회자가 회개하면 다시 목회 사역에 복귀할 수 있다고 보는가.
= 공직자든 연예인이든 성적 문제가 불거지면 바로 정상적인 공식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 정서이고 실제로 진행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계 상황을 보면 소위 말해 ‘죄의 용서’라는 부분이 신학적으로 잘못 적용되면서 목사의 개인적 도덕적 타락을 보고도 하나님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이는 분이니 이 정도는 용서해줘야 한다는 정서가 많다.

우리는 여호와를 영이시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영이신 하나님은 신자들의 행동을 통해서 형상으로 드러나신다. 이는 공적 행동뿐만 아니라 사적 행동도 포함한다. 그런데 전인격적으로 여호와를 드러내는 삶을 실패한 목회자가 과연 말씀이 훌륭하다고 해서 영적 권위를 곧 바로 회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교단의 보수진보를 떠나서 공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목회자 같은 자리에 있는 자라면 내가 여호와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면 직책을 내려놓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허락하지 않는데 강단에 올라가는 것은 굉장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전문 직종의 경우 한 번의 실수가 경력 면에서 굉장히 큰 향방을 가르는 일이 된다. 목회는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면서 아주 중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목회자 자신이 얼마든지 회개하고 금세 다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소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 것이겠나. 물론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실수할 가능성을 가능한 차단하고 조심하면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한 순간 한 순간 치열하게 하나님과 성도 앞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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