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이 보장된 탓에 '내부 비리 폭로 및 고발'이 자유롭다. 이로 인해 잘못된 관행들이 고쳐지는 등 나름대로 순기능이 작동하고 있다.
'내부 고발, 익명의 제보자'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각인된 건 아마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까지 이끌어냈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닐까.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하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에게 결정적인 내용을 제보한 익명의 취재원 'Deep Throat'는 사건 이후 33년만에 FBI 2인자였던 마크 펠트로 신분이 밝혀졌다.
당시 마크 펠트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가족들이 대신해 신분을 공개한 것이다.
이 사례는 '내부 고발'이라는 것이 제보 내용의 검증, 즉 필터링과 더불어 제보자에 대한 신분 보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시 국내 얘기로 돌아와서, 같은 회사 출신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사내 인트라넷으로는 도저희 할 수 없었던 기업의 부당한 전횡 또는 비리 등을 가감없이 올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서 '내부 고발 커뮤니티'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가입조건 역시 해당 회사의 이메일 인증을 거쳐야 하는 등 까다롭다.
실제 '블라인드'를 통해, 유명 소셜커머스가 신입사원에게도 희망퇴직을 권유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경희대학교 체대의 OT 비리, 서울대학교 성폭력 단톡방 사건 등이 모두 각 학교별 '대나무숲'을 통해 처음 거론됐다.
이런 익명 커뮤니티들은 비리 고발 뿐만 아니라 짝사랑 고백이나 훈훈한 미담 글들이 유통되는 공간이 되면서 이용자들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역기능 역시 존재하고 있다.
공익을 위한 비리 제보 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이 다분한 일명 '저격글'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허위 사실이 올라오가나 애꿎은 '마녀 사냥'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앙대학교 대나무숲의 경우, 한 여학생이 선배에게 수년 전 성폭행을 당했고 지금도 다른 여학우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글이 올라와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의 신상도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해당 내용은 익명성에 기댄 허위였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관계가 있는 남성을 폭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시작한 '강남패치/ 한남패치'는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특정인을 콕 찍어 저격하는 글들이 많아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륜설 유포' 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신상까지 공개하는 탓에, 당사자들은 '해명'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낙인'이 찍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강남패치에서 다뤘던 재벌3세와 스포츠스타의 불륜설 유포에 대해 해당 재벌3세가 강남패치를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는 없을까.
일단 해당 커뮤니티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다. 모 대학 '대나무숲'의 경우 가입하려는 사람은 관리자의 질문에 정답을 맞춰야한다.
그런데 관리자의 질문이라는 게 "ㅇㅇ대학교의 위치는?"이 고작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해당 학교 관계자가 아닌 사람도 거리낌없이 '익명성'에 기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역기능이 많아지자 계정 관리자들은 저격, 성적인 발언 등을 포함한 자극적인 소재의 글에 대한 필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자 뿐만 아닌 해당 유저들의 자정 노력도 병행돼야한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 전체를 흐린다'는 말처럼 개인적 일탈이 원래의 취지였던 '내부 고발'의 본뜻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책임한 글들로 인해 누군가는 지울 수 없는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