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철학자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닌 섭리"

김형석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

97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인생론 '백년을 살아보니'가 출간되었다.

만약 백년을 산다면 인생은 또 우리에게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그 지혜를 미리 안다면 우리 삶이 조금 더 향기로워지지 않을까?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로 우리를 일깨운 김형석 교수가 스스로 살아본 인생을 돌이켜 깨달은 삶의 비밀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사랑 있는 고생이 최고의 행복이었다고. 그것을 깨닫는데 90년이 넘게 걸렸다고.

"다른 모든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행복은 어떤 것인가, 라고 물으면 같은 대답은 없다. 행복은 모든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제1부 ‘행복론’에서 저자는 행복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시한다. 보통 사람들은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성공한 사람은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가 그리는 ‘성공과 행복의 함수 관계’는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삶은 행복하며, 성공적이다. 그러나 주어진 유능성과 가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재산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더 명확하다. 저자는 항상 가족들이나 제자들에게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충고한다. 물론 저자 자신이 주변에서 실제로 보고 들은 경험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은가. 인격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인격의 성장이 70이라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해서 90의 재산을 갖게 되면 그 분에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는다.

제3부는 우정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1960년대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에는 인생은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둘 다 아닌 또하나가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바로 ‘섭리’다. 이 같은 깨달음은 친구들을 통한 우정의 사건들에서 얻은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아름다운 친구들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인생 첫 친구였던 영길이, 초등학교 때 친구 김광윤 장로, 중·고·대학교 때의 허갑과 박치원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난 두 친구, 서울대의 김태길 교수, 숭실대의 안병욱 교수였다.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렸던 이들은 반세기 동안 사랑이 있는 경쟁을 벌인 ‘축복받은 관계’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김성수 선생 다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이 두 친구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80대 중반쯤의 어느 날, 안 교수가 “더 늙기 전에 셋이서 1년에 네 번쯤 만나자”고 제안한다. 김태길 교수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유는 “우리 셋이 다 80대 중반인데, 누군가 한 사람씩 먼저 떠나가야 할테고, 그러면 다 보내고 남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멀리서 마음을 같이하면서 지냈고, 저자만 홀로 남았다. 두 친구를 보내고 난 후에 저자는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한층 더 고독해졌다는 이야기다.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제5부는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보통 65세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와 그의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김태길 교수는 76세 때 ‘한국인의 가치관’에 관한 책을 내놓았고, 안병욱 교수는 89세까지는 일을 계속했다. 저자는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고 인정한다.

저자가 100세에 가까워지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다. 그는 20이 될 때까지는 가족마저 단념을 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50이 되어서야 정상적인 건강에 자신을 찾았을 정도다. 그래서 신체적 과로나 무리는 하지 않고 조심조심 살아왔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장수의 한 비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50이 넘어서는 주3회 정도 수영장을 찾고, 하루에 50분 정도 걷는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이 건강을 유지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저자에게 건강은 일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칸트나 슈바이처의 경우를 살펴봐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도 유지했다.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후배와 후손들의 존경을 받아야 할 의무도 있다.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노년일수록 존경스러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노년기에는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라는 것은 ‘늙으면 이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푸대접을 받았어도 상대방을 대접할 수 있는 인품, 모두의 인격을 고귀하게 대해줄 수 있는 교양, 그 이상의 자기 수양이 없다고 노철학자는 말한다.

1960~70년대 수필, 수상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자는 1980년대 이후 철학과 종교 책에 집중하면서 대중들과 멀어졌다. 그러다가 나이 90고개를 넘기게 되면서 다시 독서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오래 산 것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위로의 심정에 접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인생은 고단했고 쓸쓸했으나 솔직했고 아름다웠다. 아내가 20여 년을 병중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저자의 아내가 발병하고 2, 3년 지났을 때였다. 친구인 C교수가 찾아와 조심스럽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C교수의 아내가 밖에서 저자를 두세 차례 보았는데, 한마디로 홀아비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후 저자는 옷차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항상 미소와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반성하곤 했다. 자신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저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언제 어디서나 보여주는 잔잔한 미소’는 그런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

저자에게 건강과 가난은 타고난 인생의 짐이었고, 그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때까지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역사의 무거운 짐도 져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불행했거나 무의미한 고생이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모두 사랑이 있는 고생이었기 때문이다.

김형석 지음/덴스토리/300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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