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병·음료캔·수박껍질…피서지에 내팽개친 한국 시민의식

해운대 등 매일 쓰레기 수십t씩 배출…시민의식 개선은 '공염불'

폭염이 절정을 이루면서 전국 곳곳의 피서지가 올해도 어김없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여름 고온현상으로 발 빠른 행락객들이 바다로 산으로 몰리자 해당 지자체는 '쓰레기와 전쟁'을 되풀이했다.

지난 28일 오전 5시 전국 최대의 피서지인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는 밤새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백사장 한쪽에 곱게 모아 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몰지각한 피서객은 음식 찌꺼기와 쓰레기를 모래 속에 파묻어 놓아 뒤처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모래 속에서는 맥주병과 음료 캔, 생수병, 과자봉지, 먹다 남은 치킨, 수박껍질 등이 수북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옷가지까지 나오기 일쑤다.

환경미화원들은 쓰레기를 모은 뒤 오전 내내 분리수거를 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이날 수거한 쓰레기양만 13t에 이른다.

비슷한 시각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 인근. 이곳에도 무단 투기한 음식물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 재활용 쓰레기들이 뒤섞여 악취를 풍겼다.

조천읍은 자생단체 회원들과 함께 단속반을 꾸려 단속에 나섰지만,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매일 쓰레기 수거 지연과 관련된 민원을 10건 이상 받고 있다"라며 "평소 5t 남짓이던 함덕해수욕장 일대의 소각 대상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수거량이 피서철 들어 10t 이상으로 증가했지만, 쓰레기 처리시설 용량의 한계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은 다른 피서지도 마찬가지.

요즘 들어 매일 수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 동해안 해수욕장에도 일부 몰상식한 피서객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넘쳐 나고 있다.

강릉 경포를 비롯해 속초, 낙산 등 피서객들이 선호하는 해수욕장에선 밤새워 먹고 마신 후 장소를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를 뜨는 피서객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새벽이면 이들이 버린 술병과 음식 찌꺼기 등 각종 쓰레기가 곳곳에 널브러져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은빛을 자랑하는 백사장도 밤새 캠프파이어를 하며 여름밤을 만끽한 피서객들이 뒷정리하지 않아 검은 재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군데군데 깨진 병들이 위태롭게 방치돼 있다.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인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선 매일 30t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와 청소요원 60여 명이 쓰레기 처리에 구슬땀을 흘린다.

또 금강의 맑은 물줄기와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충북의 대표적 캠핑장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영동군 송호관광지도 주말이면 1천여 명이 넘는 피서객이 몰려 하루 2t이 넘는 쓰레기가 배출된다.

영동군은 캠핑장 20여 곳에 쓰레기 분리 수거함과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을 설치했지만, 분리수거는 요원한 실정이다.

경기도 가평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남이섬 유원지와 운악산, 명지산과 충남 금강변 등 유명산과 계곡 곳곳도 피서객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뒤덮인다.

음식물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어 파리 등 해충이 들끓고 악취마저 풍겨 주민들이 피서객이 떠난 자리의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부 주민은 쓰레기 수거 문제로 피서객과 감정싸움을 하고, 일부 피서객은 차량 밑에 쓰레기를 버린 뒤 이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고 떠나버리는 꼴불견도 연출되고 있다.

포항시는 지난 6월 개장한 영일대 해수욕장에 하루 두 차례 청소차를 투입해 매일 8∼10t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자치단체마다 피서지 관리에 나섰지만, 일손 부족은 고질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쓰레기 대란'이 반복되자 자치단체마다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을 펼치면서 상인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율적인 피서지 청소와 쓰레기 안 버리기 운동을 전개했으나 모두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성수기 하루 평균 20t의 쓰레기가 나왔으나 올해는 약간 줄었다"며 "외국인들은 음식을 먹고 난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편인데 우리나라 젊은 피서객들은 기분 좋게 음식을 먹고 그대로 자리를 떠는 경우가 많다"고 미성숙한 시민의식을 꼬집었다.

영동군청 문화체육관광과 박범환씨는 "예전보다 시민의식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분리배출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피서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에서 빈 병과 플라스틱, 비닐류 등 재활용품을 가려내는 데 4명이 반나절을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도 "피서객들에게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자칫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적극적인 단속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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