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된 '위안부' 재단 출범식…무대점거에 피습까지

'치유의 등불' 만들겠다는 재단…거센 반발로 갈등 최고조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바비엥2 호텔에서 재단 출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한·일 합의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화해와 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이 당사자를 배제한 합의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장 무대점거와 이사장에 대한 피습까지 발생하는 등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 이사장 "한·일 합의는 희망의 불씨…치유의 등불 만들겠다"

화해와 치유재단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바비엥3빌딩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재단이사장은 설립준비위원장인 김태현 성신여대 교수가 맡았으며, 이사진에는 준비위원 대부분이 이름을 올렸다.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담당국장은 당연직 이사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현판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일 합의로 인해 피해자분들의 상처를 치유할 희망의 불씨를 찾았다고 생각한다"며 "어렵게 찾아낸 이 불씨를 논쟁에 빠뜨려버리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단의 역할은 그런 불씨를 키워 피해자들의 마음을 환히 밝히는 치유의 등불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시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김 이사장은 '위안부' 생존 피해자 37명을 직접 만났으며, 이들 대부분이 재단 사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루라도 빨리 재단을 설립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재단 설립에 대해 사전에 전혀 듣지 못했다는 할머니들이 나오면서 조사 과정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한·일 합의 취지에 공감하며 재단 설립준비위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이사로 추인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셀프 인선'이란 비판도 나온다.

다만 김 이사장은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하겠다는 10억엔을 장학사업에 추진할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 캡사이신 세례 당한 이사장…고통 호소하며 병원행

캡사이신 세례를 받고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김태현 이사장 (사진=김광일 기자)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온 김 이사장은 별안간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뿌린 액체 물질을 맞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때 주변에는 매운 냄새가 퍼졌으며, 해당 물질은 이 남성이 최근 구입한 '캡사이신'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때마침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퇴원한 상태로 알려졌다.

당시 김 이사장은 기자회견 후 추가 질문을 요청하는 기자들에 둘러싸여 일대가 혼란한 상태였다. 김 이사장은 자신을 가로막고 항의하던 기자들을 피해 가까스로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캡사이신을 뿌린 남성은 현행범으로 체포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상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 무대 점거한 대학생들 "가해자를 위한 못된 재단이다"

화해치유재단 설립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28일 오전 '화재치유재단' 설립 기자간담회가 열릴 예정인 서울 서대문구 바비엥2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재단설립 반대 기습시위를 하다가 연행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기자회견 직전 행사장에서는 대학생 20여명이 난입해 무대를 점거하고 재단설립 중단과 한·일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이들은 내·외신 취재진 수십명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와 치유재단은 가해자를 위한 못된 재단"이라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라고 외치다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 중 일부는 '평화나비 네트워크'에 소속됐거나, 그동안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해온 대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현판식 전 이사회가 열리던 오전 10시쯤에는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 대학생 운동본부'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의 기자회견도 잇달아 열렸다.

정대협 정태효 생존자복지위원장은 "누구를 위한 화해와 치유냐"며 "피해자들의 권리를 한낱 돈의 문제로 전락시키며 제 손으로 살아있는 역사를 봉인하는 한·일 합의와 화해와 치유재단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대학생 운동본부 김유진 대표는 "화해와 치유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진정한 사죄를 받고 이를 해결로 받아들이실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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