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낳을 전망이지만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법은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 벤츠·스폰서 검사에서 출발한 김영란 법
김영란법은 애초 지난 2010년 '스폰서 검사'과 2011년'벤츠 여검사' 사건에서 시작됐다.
건설업자에게 향응과 돈을 받은 사건과 변호사에게 벤츠를 받은 사건이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잇달아 무죄가 선고되자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금품을 받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며 처음 제안됐다. 애초 대상은 판검사 등을 포함한 공무원에서 출발했다.
◇ 먼지 쌓이다 세월호 참사로 급물살
권익위는 2012년 8월 공직자가 금품 등을 100만원 초과 수수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 내용의 원안을 입법 예고했고, 다음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좀처럼 법안이 탄력을 받지 못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됐지만 '법의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묵히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러던 찰나에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김영란법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후진적인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가 지목되면서 여론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조속한 법안처리를 국회에 요구했다.
그런데 국회 논의과정에서 원안에 없던 민간분야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면서 과잉입법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나 변호사, 의사, 금융인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다른 전문직이 제외되면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근본적으로는 부정청탁 기준의 모호성, 수사기관에 의한 언론 통제 가능성, 배우자 신고 의무 등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더군다나 애초 김영란법의 중요한 한축이었던 이해충돌방지 부분은 여야간 설전만 벌이다가 다음에 보충하는 쪽으로 후퇴했지만 결국 법안에서는 빠졌다.
이해충돌방지제도는 공직자의 4촌 이내 친족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되면 해당 공직자를 업무에서 무조건 배제하는 조항이 핵심인데 여야는 위헌성이 있다며, 대안을 놓고 입씨름만 벌이다가 시간을 허비했다.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빠진 반쪽짜리 법안은 2013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와 기자협회 등에서 헌법소원을 내면서 김영란법은 계속해서 위헌시비에 휘말렸다.
◇ 헌재 "김영란법 합법"…논란은 계속될 듯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에도 한우, 굴비, 화훼 등 농축수산업계와 외식업계의 반발이 일었다. 그러나 권익위는 올해 5월 시행령을 통해 금품 상한선을 식대대접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결정했다.
헌재 결정 직전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이 공동으로 시행령을 조정해줄 것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시행령의 상한선이 너무 엄격해 농어업인 소상공인의 생존을 어렵게 할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핵심 쟁점에 대해 헌재가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릴 정도로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그만큼 여진도 계속될수 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