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인 25일부터 진행 중인 전당대회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그리고 이들의 지원 연설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정치인들이, 심지어 내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정치인들이 나와서 연설을 하는 게 뭐 그리 흥미롭겠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페이스북 라이브 알림을 클릭한 순간, 끝날 때까지 중계를 끄지 못했다.
대체 뭣이 그렇게 재미났던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클린턴 지원 사격에 나선 인사들은 미셸 오바마,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다. 메릴 스트립 같은 유명배우도 참여했다.
첫날 미셸 오바마의 연설은 이미 하루 만에 '역대 최고의 정치 연설이 나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의 스타는 미셸일 것이라는 찬사와 함께.
"나는 매일 아침 흑인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지적으로 자라난 내 딸들, 두 흑인 여성이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것을 본다. 힐러리 클린턴 덕분에 제 딸들과 우리의 모든 아들과 딸들은, 여성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나는 힐러리 클린턴의 편(I'm with her)"
"누군가가 이 나라가 위대하지 않으며,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자. 왜냐하면 이 나라는 바로 지금 가장 위대한 나라이니까" (추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슬로건을 반박한 것)
클린턴의 막강한 경쟁자였던 샌더스의 연설은 말할 것도 없다.
막판까지 경선 편파 관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클린턴에게 샌더스의 강력한 지지 연설은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는 연설 내내 자신을 패배시킨 클린턴의 이름을 15차례 언급하며 지지를 보냈다. 클린턴을 야유하던 샌더스 강경 지지자들의 마음이 움직였을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힐러리 클린턴이 되어야 한다"
"경선의 성과로 민주당 정강과 공약은 역대 가장 진보적인 내용이 됐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공약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임기 동안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이튿날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 연설은 유튜브 생중계 동시 시청자가 3만 7000명에 달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퍼스트 젠틀맨'이 될 수도 있을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71년 자신이 '한 소녀(힐러리)'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걸어온 인생사를 '스토리텔링'하면서 클린턴이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임을 강조했다.
며칠 앞서 열렸던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테드 크루즈 의원이 끝내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고 했던 것과 사뭇 비교되는 민주당 전당대회.
무엇보다도 민주당 인사들의 연설은 길게는 30여 분 간 이어졌는데도 내내 자기 확신과 진정성이 넘쳐났다. 쉬운 어휘와 명확한 의사전달력이 돋보였다. 이 점이 대중의 이목을 붙들어놨던 것 아닐까.
심지어 명장면들은 앞으로도 더 나올 듯하니, SNS의 바다를 헤엄칠 때 한 번쯤 눈여겨봐도 좋겠다. 민주당 전당대회 사흘째인 27일(현지시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찬조 연설에 나선다. 클린턴은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8일, 후보 수락 연설을 할 예정이다.
추가로, 평소 정치에 '1'도 관심이 없는 나를 설레게 한 '정치의 향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데이비드 캐머런의 뒤를 이어 차기 영국 총리가 된 테레사 메이의 의회 데뷔전이다. '메모'도 '보고서'도 없이 즉석에서 자신감 넘치는 '격론'을 벌인다.
남의 나라 정치를 SNS로 보면서 이렇게 부러워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