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을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힐러리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25일(현지시간) 마지막 연설자로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하지만 단상에 오른 샌더스는 한동안 연설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필라델피아의 농구경기장 웰스파고센터를 가득 채운 대의원과 지지자들의 터질듯한 박수와 열광적으로 '버니 버니'를 외치는 함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유의 비장한 모습으로 애써 연설을 시작하려 했지만 샌더스의 목소리는 이내 지지자들의 환호에 묻혀 버렸다. 하늘색 '버니' 손팻말을 든 일부 지지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샌더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몇분을 그렇게 "땡큐"만을 외쳤다.
지난해 5월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경선 기간 내내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미국 사회를 뒤흔든 74살의 노정객 샌더스가 당의 단합을 호소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 직전 당 지도부가 경선을 편파 관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샌더스 지지자들이 한껏 격앙된 상태였다.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거친 시위로 50여명이 연행됐고 전당대회장 안에서도 '힐러리'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샌더스 지지자들이 야유를 보냈다. '힐러리를 감옥으로'라는 구호까지 나오는 분열적인 상황이었다.
연단에 오른 샌더스는 30분간 격정적인 연설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그는 "많은 사람들이 경선 결과에 실망하고 있음을 안다"면서 "하지만 나보다 더 실망한 사람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적인 성과를 매우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며 "정치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기간의 성과로 민주당 정강이 가장 진보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8년전 금융위기를 극복한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도 언급했다. 이어서 클린턴 전 장관의 생각과 정책을 트럼프와 조목조목 비교 언급한 뒤 "클린턴의 생각과 리더십을 근거로 클린턴이 반드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내는 '힐러리'와 '버니'를 연호하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샌더스는 이날 연설에서 클린턴을 15차례 언급하며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경선 2위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지지 연설을 하면서 단 한번도 대선 후보인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은 채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고 맞선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