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분피습' 경비원, 트라우마 1년 "불면증에 구역질"

돈없어 병원치료 못받고 다시 경비원 취업…피의자는 집행유예

'인분 피습' 사고 당시 사진.
지난해 아파트 입주민에게 '인분 피습'을 당했던 경비원이 1년 동안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해당 경비원은 돈이 없어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다시 경비일에 나섰다. 반면 인분을 던진 피의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 불면증에 구역질…공원에 몇 시간씩 멍하니 누워있기도

지난해 5월 13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 이모(41) 씨는 별안간 경비실에 들어가 경비원 민모(67) 씨의 얼굴에 인분을 비볐다.

그러면서 "막걸리를 마시고 싼 것인데 맛있냐"며 "다음에는 흉기로 찔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민 씨가 이전에 한 주민의 민원을 받고 "단지 내에서 흡연을 자제하라"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흡연 당사자였던 이 씨를 언짢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민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불현듯 사건 생각이 들면 구역질이 나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민 씨는 최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내가 예민해진 탓에 자꾸 옆에 있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내고 어떨 때는 안 하던 욕까지 해서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아파트 경비원 민모(67) 씨 (사진=김광일 기자)
그러면서 "그럴 때면 집 앞 공원에 나가 몇 시간씩 벤치에 미친놈처럼 멍하게 누워있기도 했다"며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엔 못 갔다"고 밝혔다.


한숨을 내쉬며 "통원 치료를 받으려 해도 약값이니 교통비니 하면 몇만원씩 들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며 "여유가 있었다면 병원에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떠올릴 때마다 너무나 아픈 기억"이라면서도 "경비원들의 인권이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당시에) 용기를 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큰아들이 울고불고하며 그놈을 패 죽이겠다는 걸 어렵게 말리면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 폭행·협박으로 기소, 이후 집행유예 선고

민 씨는 사건 직후 이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 씨가 외려 "절대 합의는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조사가 이어졌고,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남부지검은 이 씨가 '인분을 던진 행위'를 폭행죄로, '흉기로 찌르겠다고 말한 것'을 협박죄로 보고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법원은 지난해 10월 같은 혐의로 이 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민 씨는 "징역 6년 정도 나올 줄 알았다"며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 사람은 두 다리 쭉 뻗고 살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한편, 민 씨는 올해 초 근처 아파트에 다시 경비원으로 취업해 근무를 서고 있다.

지난해 취재진에게 "이 일은 다신 못하겠다"고 말한 그였으나 "60대 넘어서 할 수 있는 게 경비나 배달일 밖에 없더라"며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한 것.

그는 2교대 근무를 서면서 24시간씩 부스를 지키지만 식사·취침시간 등을 제외한 15시간 분량의 임금을 받는다. 물론 6030원의 최저임금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