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대가의 마음 수업, 그 8가지 마음은?

신간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

77세의 할머니 요리 선생, 심영순 원장이 거침없는 인생 내공을 담은 에세이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을 출간했다. 그녀가 내로라하는 집안의 '요리 독선생(獨先生)'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녀 나이 서른이 갓 넘은 무렵이다. 그로부터 40여년간 요리 선생이자 한식 연구가로 살아온 심 원장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저녁 밥상을 제철 음식으로 정성을 다해 차려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에게 싸준 도시락이 학교에 소문이 나면서 학부모를 위한 반찬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소문은 곧 서울 반대편 동네에까지 퍼졌고, 그것이 재벌가와 명망가, 청와대 여인들의 '요리 독선생' 수업으로 이어졌다.

요리 외에는 좀처럼 살아온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았던 심영순 원장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혹독하게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고된 시집살이와 딸만 넷을 낳은 며느리로서의 삶, 평생을 강직한 공무원으로 살았던 남편과 네 딸들의 성장담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무려 40년 넘게 요리 선생으로 살아오면서 일과 가정을 병립해온 내공, 한 집에서 두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정성, 한식이라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의 집념까지. 심 원장은 그 모든 것들을 가능케 했던 것이 그녀가 품고 살았던 8가지 마음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 8가지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첫째로 심 원장은 요리와 살림, 농사라는 고된 노동을 통해 알게 된 자연과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말한다. 또한 어린 시절, 전쟁을 거치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혹독하게 배운 요리 수련, 그리고 스승이었던 어머니의 삶이 만든 단단한 마음, 본격적인 한식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모든 음식을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만들겠다는 의연한 마음, 작은 밥상이라도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하며 정성과 사랑을 담아 차린다는 고귀한 마음 등 8가지 마음이 그녀를 한식의 대가로 성장시켰다고 회고한다.

심 원장이 전국 각지의 요리 고수들의 비법을 찾아다니고 황혜성 선생을 비롯한 궁중요리 전수자들에게 사사받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밑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일'에 대한 숭고한 철학,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종 "음식은 사랑과 정성에 다름 아니며, 내 가족에게 지어 먹이는 마음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아예 요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먹는 이의 건강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음식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이다.


심 원장은 시대상과 여성의 지위는 달라졌어도,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기쁨, 자녀들이 밥상에서 느끼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 따뜻한 밥 한술에 밖에서 힘을 내는 남편들의 속내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전한다.

책 속으로

지난 70년간 내가 부엌에서 배운 것은 마음을 담는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하고, 열심히 먹이고, 사랑했습니다. 남들은 요리 선생이다, 한식의 대가다, 거창하게 불러주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냥 누군가를 위해 밥하는 사람, 요리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상이 가족에서 이웃으로, 친구에서 제자들로,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로 점점 넓어진 것은 덤으로 얻은 축복입니다.
- 11쪽, 《차림에 앞서》 중에서

“그래, 잘했구나.” 칭찬치고는 너무나 무심한 한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로 나의 세상은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천국을 또 맛보기 위해 나는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살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해내고 싶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에는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했지만 십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이상의 호기심과 자부심이 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저 어머니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주인의식이 자리 잡은 것이지요.
- 65쪽, 《2장 단단한 마음》 중에서

“어머님들이 강의를 더 해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도시락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입맛 없을 때 잘 먹는 순두부찌개와 대구탕, 육개장 등을 준비해서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손님 상차림을, 그다음에는 술상을, 그다음에는 제사 음식을 가르쳐달라며 계속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어느덧 내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큰 책임감이 밀려왔습니다. 내 요리를 배운 사람들은 그것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먹일 것입니다. 건강하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 100-102쪽, 《3장 의연한 마음》 중에서

어머니가 쓰시던 방 옆방을 시어머니에게 내어드렸습니다. 그때부터 두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쭉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마음이 잘 맞는 두 분이었지만 식성만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싱싱한 나물과 바삭한 생선구이, 조림류를 좋아하신 반면, 시어머니는 푹 삶아 무친 나물 반찬에 김치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두 분의 밥상을 따로 차려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한집에서 두 노인을 모시면서 세끼 밥상을 따로 차려드리는 생활을 그리 오랫동안 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낳고 내 남편을 낳아준 두 어머니가 한집에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두 분에게 내 손으로 밥을 지어드리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 162-166쪽, 《5장 부지런한 마음》 중에서

요리는 시간을 잘 안배해야 합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서너 가지 만들 경우 뭐 하나 너무 빨리 되거나 너무 느리게 되는 것 없이 동시에 모든 요리가 끝나야 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요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거꾸로 계산해서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7첩 반상을 차리는 데에 3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씩 다 합치면 한 시간 반이 걸리겠지만 밥을 앉혀놓고 나물을 다듬고, 국을 끓이면서 나물을 데치고, 생선을 구우면서 국에 간을 하고 밥에 뜸을 들인다면 30분 만에 모든 준비가 끝나게 됩니다. 요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스스로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 179-182쪽, 《5장 부지런한 마음》 중에서

나는 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딸들이 걸어가는 삶의 행로를 보면 큰 성공과 부를 좇기보다는 항상 의미를 좇아갑니다. 욕심 앞에서 도리를 선택하는 모습을 늘 보았습니다. 결혼도 조건 좋은 부잣집 남자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들이 없다는 아쉬움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살뜰한 사위가 네 명씩이나 있으니 아들들을 거저 얻었습니다. 효도는 다른 게 없습니다.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효도입니다.
- 266쪽, 《7장 겸허한 마음》 중에서

음식을 만들고 연구하고 나누었던 요리 인생 70년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가족을 향한 마음이나 손님을 향한 마음, 또는 내 자신까지도 귀하게 대접할 수 있는 자기애를 포함한 마음이 없다면 음식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혜로운 선조들이 말했던 ‘손맛’이라는 것이 결국은 이런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326-327쪽, 《차림 마무리》 중에서

심영순 지음/인플루엔셜/336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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