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잃고 사흘이 흐른 지난 1월 12일, 김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고객님, 즐거운 여행되셨습니까?"
◇ 졸업 축하 해외여행이 씻을수 없는 상처로
지난 1월 7일, 김 모(50) 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두 자녀를 축하해주기 위한 가족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가족여행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돌아왔다.
여행 이틀째였던 1월 9일 오전 9시쯤, 싱가포르에서 관광을 즐기고 있던 김 씨 부부는 "인도네시아 리조트에 있던 아들이 사고로 사망했고 딸도 생명이 위험한 상태"라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달려갔지만 김 씨 부부가 마주한 것은 이미 숨진 아들의 시신과 간 출혈과 요추 골절로 중태에 빠진 딸의 모습이었다.
아들과 딸은 리조트에서 바나나보트를 타고 있었고 보트 운전자가 급가속을 하던 중 운전미숙으로 방향을 잃은 보트가 그대로 두 자녀에게 돌진한 것이다.
현지 경찰조사 결과, 보트를 몰던 운전자는 심지어 면허조차 없던 인도네시아 미성년자였다.
1월 12일, 김 씨 부부는 현지에서 아들을 화장했다. 그리고 그 날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라는 하나투어의 문자를 받았고 김 씨 부부는 할 말을 잃었다.
김 씨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저런 문자를 보낼 수 있냐"며 "조금의 배려도 없는 회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더 큰 문제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투어는 "현지여행업체의 과실"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조금의 피해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딸 죽어 가는데도 병원비 줄 수 없다는 여행사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김 씨는 하나투어의 무책임한 대응에 분노를 터뜨렸다.
"사고당시 딸 아이는 간에서 피가 나고 척추 손상이 있어 중환자실을 입원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당장 싱가포르의 병원으로 갔지만 병원서는 외국인은 예치금으로 3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2800만원)를 내야 입원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하나투어 측에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현지 리조트의 책임이니 그 쪽에서 받으라'는 말이었어요. 타지에서 2800만원의 큰돈을 어디서 구하며 딸이 죽어간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받지 못했어요."
결국 리조트에서 예치금을 대납해주고서야 김 씨의 딸은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여행 출발 전 하나투어가 김 씨에게 보낸 여행약관을 보면 하나투어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여행약관 제 8조에는 '당사는 여행출발 시부터 도착 시까지 당사 또는 그 고용인, 현지여행업자 또는 그 고용인이 과실로 손해를 가한 경우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있고 손해배상도 하나투어가 책임진다고 돼있다.
그럼에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투어의 손해배상은 없었고 김 씨에게 지급된 것은 고작 여행경비 600만원이었다. 그마저도 김 씨가 수차례 항의 방문을 하고 나서야 지난 6월 22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나투어 측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현지 업체의 과실이라 현지 업체에 계속 피해보상에 관해서 문의 중"이라며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며 해외와 연락하다보니 늦어지니 시간을 달라"고 답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말을 바꾸는 모습도 보였는데 "사고가 난 바나나보트 코스는 피해고객이 옵션으로 선택한 것이지 우리가 안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여행일정표에 안내돼 있는 바나나보트 코스를 보여주자 "자신들이 소개해준 것이 맞다"며 "착각했다"고 말을 바꿨다.
◇ 6년 전 사고에도 책임 없다던 하나투어, 여행사 책임회피 문화 뜯어 고쳐야
하나투어의 무책임한 대응과 책임회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11월 27일, 남태평양 피지로 신혼여행을 떠난 이모(당시 28세) 씨 부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산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하나투어는 현지 업체와 버스운전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보상을 미루다 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갔다.
하지만 법원의 당시 재판을 맡은 서울지방법원은 하나투어 측의 여행약관을 근거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며 하나투어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지 옵션관광이 하나투어의 승인을 받아 실시하고 있는 여행상품" 이라며 "현지여행업자가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하나투어는 여행업자로서 망인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2009년 11월에도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당시 하나투어 상품으로 관광을 간 박모(당시42) 씨가 총탄에 맞아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 역시 법정다툼까지 갔다.
1년 6개월간 이어진 법정다툼 끝에 재판부는 이번에도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해외여행 중 발생한 상해사고에 대해 여행사에게 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원은 "대부분의 해외여행상품은 국외여행표준약관을 따른다"며 "표준약관 15조에는 여행종사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피해가 생길 경우 당사가 여행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과거 여러 판례가 하나투어에게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6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투어의 대응엔 변함이 없다.
아들을 잃은 김 씨는 현재 하나투어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까지 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하지만 하나투어의 답변에는 변화가 없었어요. 현지 업체를 압박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죠.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소송을 낸다고 하니 '낸다면 말릴 수 없다, 소송해라' 하더라고요."
하나투어는 '1등 여행사'라며 여전히 자사를 홍보하고 있지만 김 씨의 남은 딸은 지금도 병원에서 투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