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내놓으라 하는 냉면집은 많지만, 대전에서 나고 자란 내가 최고로 꼽는 냉면은 '숯골원냉면'이다. 이 집 냉면은 비주얼부터 다르다. 소고기 편육 대신 닭고기가 올라가고, 삶은 달걀 대신 지단이 길쭉하게 누워있다.
닭 육수를 쓴다는 얘기다. 면은 입술로도 끊길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고, 닭 육수와 동치미를 섞어 만든 냉면 육수는 담백하고 구수하다. 평양냉면은 원래 다 그렇다고? 나의 서툰 표현에 돌을 던지고 싶다….
◇ 역사는 돌고 돌아 전설이 된다
1954년 '숯골원냉면'을 창업한 박근성씨는 이북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경영하던 '평양 모란봉냉면'집의 장손이었다. 일제 때부터 이어오던 가업인데다 제법 규모도 있어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북 최고의 명문학교 '평양고보'를 졸업했지만 해방 이후 그의 집은 자본가라는 이유로 가산을 몰수당했다. 1·4후퇴 때 잠시 몸을 피하려고 혈혈단신 내려왔던 길이 막혔고, 생계를 위해 가업으로 내려오던 평양냉면을 남한 땅에서 다시 시작했다.
(모란봉냉면은 냉면의 본거지 평양에서도 유명한 집이었다고 한다. 이름께나 날리는 당대 유명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는데, 그 중에는 김일성도 있었고, 가끔 어린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는 일도 있었다고, 박근성씨는 추억한다.)
박근성씨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대전 처녀와 결혼해 대전에 정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신성동'으로 지명이 바뀐 '숯골'에 평양냉면집을 시작했다. 숯골에 제대로 된 평양냉면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이들은 주로 평안도 출신 피란민들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박근성씨의 냉면을 알아주었고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불어났다.
박근성씨는 슬하에 아들 둘, 딸 넷 6남매를 두었다. 어머니 등에 업혀 냉면집 주방에서 자랐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냉면집 일을 거들던 둘째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결혼 후 1991년부터 26년간 남편과 함께 '숯골원냉면'을 이끌어온 윤선 사장은 처음 10년은 장사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도 고됐지만 냉면이 뭔지, 장사가 뭔지도 모르고 시집을 왔고, 무엇보다 음식과 가게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보니 장사 자체가 창피했다. 투덜대는 손님들 상대하는 일도 버겁기만 했다. 하지만 윤선 사장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시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했고, 가르쳐주는 대로 배워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윤선 사장이 냉면과 가게에 자긍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어느 해 겨울 남편과 전국 냉면 맛 기행을 떠났다. 세월도 바뀌고 사람들 입맛도 변했는데, 너무 옛날 방식만 고집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전국에 내놓으라 하는 냉면집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부의 마음 자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 '남한 땅에서는 우리 냉면이 가장 완벽한 평양냉면이야. 우리가 처음이고 제일이지'라는 말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면 값 8000원(2016년 현재). 10여 년간 7000원을 고수하다가 메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올해는 어쩔 수 없이 1000원을 인상했다.
"고민 많이 했죠. 매일 오시는 단골손님들이 많은데, 식구 같은 분들인데, 돈 올려 받기가 죄송했거든요. 그런데 다들 당연한 인상이라고 이해해주시니 감사하죠."
감사한 손님이 있는 반면, 진상손님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선 사장은 그런 손님들조차 '다 괜찮다, 다 감사하다'고 한다. 성인군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정승이나 머슴이나 우리 집에 들어오면 다 똑같은 냉면을 먹고 똑같은 값을 치른다. 밥상 앞에서는 모두 귀한 손님'이라는 시아버지의 평소 가르침 덕분일 것이다.
100년 가게의 공통점은 귀한 사람, 낮은 사람 없이 손님을 모두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냉면만큼 맛 내기 어려운 음식도 드물다. 대를 이은 주인들만 공유하는 특별한 레시피가 있지 않을까 슬쩍 물어봤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어요. 닭 육수에 동치미 국물의 비율 정도…?"
그마저도 정형화된 레시피가 없단다. 냉면 육수를 만드는 남편의 혀가 레시피일 것이다. 그것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 냉면을 먹어온 그 집 자식만이 가능한 일이다. 대를 잇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좋은 메밀도 필수지만, 냉면집에서 가장 신경 쓰는, 중요시하는 식자재는 뭘까?
"가을에 담는 동치미죠. 동치미 국물이 냉면 국물 맛을 좌우하거든요."
한 해 쓰는 동치미 무만 2만 개. 무는 작황상태가 매년 천차만별이라 계약재배보다 제철에 수확지를 일일이 다녀보고 가장 실한 것들로 구입한다. 찬바람이 불면 박영흥씨는 좋은 무와 배추가 나왔다는 산지로 직접 달려가 속을 갈라보고 맛을 본다. 그 무로 동치미를 담궈 땅에 묻고 그 다음해 초부터 순차적으로 꺼내서 쓴다.
지금도 김치를 땅에 묻어 쓰는 가게들이 많다. 과학자들이 김치냉장고를 아무리 연구해도 그냥 땅에 묻는 맛을 재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6년간 식당을 운영하면서 윤선 사장이 뼈저리게 실감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장사는 머리가 아니라 (단련된) 근육으로 하는 거더라고요."
노하우고 전략이고 그런 건 다 둘째고,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력관리가 중요하다. 몸이 힘들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짜증이 나면 손님과 직원들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부부가 체력관리를 소홀하지 않는 이유다.
◇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맛과 가치
박영흥·윤선 부부에게는 2남 1녀가 있다. 박영흥씨의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삼남매 역시 부모의 일을 도우며 하루 한 끼는 냉면을 먹으며 자랐다. 5대를 이을 자녀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부는 그냥 물려주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돈으로는 안 물려줄 겁니다. 돈이 아니라 맛과 가치를 물려줄 겁니다. 그 가치를 알고 제대로 계승할 수 있는 아이에게 물려줄 겁니다."
평양냉면집에 가면 머리에 세월의 두께를 하얗게 얹은 손님이 대부분이다. 젊어서 안 먹던 음식을 나이 들었다고 갑자기 찾게 될까? 물론, 전통의 맛이 변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소망일 뿐이고, '숯골원냉면'이 4대에서 5대, 또 6대로 이어져도 사람들이 전통 평양냉면의 맛과 가치를 사랑하고 찾아줄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것이 전통음식으로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고민이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