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지난 5일 열린 '세바시 7월 안전특집 강연회'는 실내를 빼곡히 메울 정도로 청중의 열띈 호응을 받았다. 영상은 17일 유튜브에 공개됐다.
객석 자리가 모자리 무대 위에 앉은 이들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디자인하라"는 주제로 청중 앞에 선 정 씨는, 무대 위 팬들을 보고 "VVIP석이냐"며 크게 반가워했다.
정 씨는 "15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짧은 시간에 얘기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지만 편하게 하겠다. 쉬는 얘기를 하려 한다"며 "스트레스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데, '마음의 안전'이란 제목을 달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우리는 매순간 겪는다"며 "아침에 눈을 뜬 후 스트레스를 단 한 번도 받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일은 어렵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화가 나는 환경에 노출이 된다"고 말을 이어갔다.
정 씨는 "안전이라는 범주에 내가 가당키나 한가 생각했다. 나는 안전과 반대되는 사람이다. 불안전하다. 격동의 세월을, 삶을 살아냈다"며 "나는 오랜 세월 많이 화가 나 있었다. 내 인생에 터진 일련의 사건들로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일 이야기하고 인사 나누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수군대는 일을 겪었다. 그게 나중에 봤을 때 상상인 부분도 있었지만, 당시엔 그게 참 화가 났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정 씨는 과거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방송인 안재환이 자살하며 사별한 바 있다.
그는 "고통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겪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먼저 설명하는 게 예의일 것 같다"며 "화 기운이 가득차 일상을 살기 힘들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 가족들의 지지가, 사회적 환경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게 했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그 일'이 있고나서, 나는 1년도 채 안 돼 라디오에 복귀했다. 시선들이 따가웠지만 나는 그게 이겨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한 뒤 "하지만 마음 속에 눌려 있던 화는 풀리지 않았었다. 견디는 시간들,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웃는 일도 노동일 만큼, 괜찮은 척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정 씨는 "남편, 사랑하는 친구를 '자살'이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잃고, 연예인이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짓밟힌 것보다 더 무서운 삶이 나를 기다렸다"고 회고했다.
이어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시간이 나를 기다렸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결백한데 이걸 사람들이 언제 들어줄까. 나는 내면의 소리가 아닌 밖의 소리들에 집중했었다"며 타인에게 보이는 삶을 사는 연예인으로서, 큰 일을 겪고도 자신 내면의 치유에는 신경쓰지 못했던 시간들을 청중에게 담담히 풀어놓았다.
정 씨는 "사건이 크게 회자된 후 3~4년이 지나서야 내면의 고통이 느껴졌다"며 "오죽하면 내 매니저가 '누나가 지금 잘못되어도 시기가 맞지 않아 인정해줄 사람 없다'고 잔인하게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전했다.
정 씨는 매니저의 말에 자신을 먼저 투명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고 고백을 이어갔다.
그는 "내가 보는 나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연예인이란 직업 특성상, 대중의 박수 소리에 따라 몸집이 부풀려진다"며 "그런 조건들을 다 배제한 나라도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하루를 나랑 연애하듯 살았다. 거울을 보고 참 예쁘다고 말하고, 이 정도 풍파를 겪어내고도 피부도 좋고, 곱다. 나는 강하다. 잘 견뎠다 말했다. 처음엔 눈물이 많이 났다. 세상이 나를 자꾸 안 괜찮다고 다른 범주에 묶어뒀다. '힘내'라는 말도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가장 싫었다"며 "옆에서 침뱉듯이 그렇게 말하고나면 난 너무 고통스러웠다.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말에는, 당신이 가져가라는 말을 했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주변의 어떤 응원도 힘이 되지 못했던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과 말 없이 밥 한 끼 먹는 것이 가장 힘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거울을 보며 나에게 말을 하다보니 없던 의지를 만들어 주더라"며 "모든 관심을 끄고 나를 돌아보니 내가 바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더라"고 깨달음을 전했다.
◇ 매일 '세 줄 일기'로 나를 파악
정 씨는 자신이 마음의 외침에 집중한 방법으로 세 줄 일기를 소개했다.
그는 "정말 아주 간단하다. 오늘 하루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안 좋은 일, 좋은 일, 내일 할 일 세 가지를 적는다"며 "비가 와서 머리가 엉망이 됐다. 그래도 피부는 좋다. 자동납부대금이라도 할 일을 만들어 쓴다"고 소개했다.
정 씨에 따르면, 이 방법대로 일기를 작성하면 순위권에 없는 모든 스트레스는 거론될 가치가 없는 일이 된다. 그는 "그렇게 2주만 써봐도 내가 어떤 일에 반응하는지 패턴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이가 있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며 "우리는 완성돼 있지 않아 특별한 일이 생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라고 위로를 건넸다.
'세바시'는 CBS가 만드는 대한민국의 강연 프로그램이다. 세바시 채널(유튜브, 네이버TV캐스트, 다음 TV팟, 팟캐스트 등)을 통해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 http://www.youtube.com/cbs15min
▲세바시 안드로이드앱: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세바시' 검색 후 무료설치
▲세바시 팟캐스트: 아이튠즈에서 '세바시' 검색 후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