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 유가족, 일반 국민보다 트라우마 93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피해자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공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면담에 응한 단원고 희생자 가족 145명 중 79명(56%)은 최근까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1년 유병률(0.6%)의 93배나 높은 수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하거나 실제 시도까지 한 경우도 각각 42.6%, 4.3%나 됐다. 역시 일반 국민에 비해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20배 이상 높았다.
참사의 후유증은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응답자들은 수면 이상(75.4%), 두통(72.7%), 소화 이상(60.4%), 심장박동 이상(58.5%), 호흡 이상(45.7%) 등을 겪었다.
이러한 실태조사는 전문가들이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145명에 대한 심층면담한 결과로 파악됐다.
이날 발표에 나선 연구책임자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지난 2년이 가족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아니라 고통과 불신의 연속이었다"며 "앞으로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슬픔은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 학생들의 충격도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에 응한 생존 학생 19명 중 대부분은 전문가와의 면담에서 '구조'라는 용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배 안에 사람이 가득한데도 해경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는 구조가 아니라 '탈출'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순진해서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 구조가 더 어려워진다는 선원들의 말을 듣고 참은 것'이라며 성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원고 생존 학생과 이들의 가족을 조사한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는 "생존 학생은 부조리를 고스란히 지켜본 목격자임과 동시에 2차 폭력에 피해 입은 당사자"라며 "이들은 이후에도 병원, 연수원, 학교, 언론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단원고 학생이 아닌 일반인 희생자들 역시 수면장애나 두통, 호흡 이상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원 체계가 다르거나, 안산 단원고에만 치료서비스나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국가기관이 대형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이들을 상대로 공식 실태조사를 벌인 건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과거 대형참사에서는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와 국가 지원의 필요성을 기록한 자료가 부재했다"며 "재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인권 친화적·공식적 지원과 개입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