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총재의 기자회견에 많은 국민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집값과 전세값은 치솟고 쇠고기, 채소 등 장바구니 물가는 오르는데 정작 당국은 물가가 너무 낮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
같은 물가를 두고 당국과 소비자 사이에 왜 이렇게 심한 인식차이가 생겼을까?
먼저 한은이 지금의 물가를 적정 수준보다 낮다고 판단하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한은이 작년 연말에 발표한 향후 3년간의 물가안정목표는 2%였다. 잠재성장률(한 나라 경제가 물가불안 등의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우리경제 상황에서 적정 물가상승률이 2%라는 의미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하는 지난 6개월간의 소비자물가는 평균 0.9% 상승에 그쳤다. 한은이 설정한 목표 2%보다 0.5% 포인트 넘게 이탈했고, 이 때문에 올해 도입한 설명책임제에 따라 총재가 그 원인과 대책을 직접 설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반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통계청의 공식물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행은 매달 소비자동향조사를 통해 체감물가를 조사 발표하는데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와는 조사방법에 차이가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의 소비·지출 비중이 큰 481개 대표품목의 가격변동을 시장 등에서 직접 조사해 가중 평균해 산출한다. 이에 비해 한은의 체감물가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다.
한은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의 체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4%로 조사됐다. 또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전망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4%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의 3배 가까운 것으로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도 높다.
이 같은 체감물가와 실제 소비자물가 사이의 괴리 때문에 한은 총재의 저물가에 대한 설명회를 국민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 체감물가가 더 높게 느껴지는 이유
소비자물가지수는 지출금액 비중이 큰 품목의 가격변동에 영향을 크게 받지만 개인은 지출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음식료품과 같이 구입 빈도가 잦은 품목의 가격변동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 비교시점도 소비자물가지수는 일년전과 비교하지만 개인은 직전 구매시점과 비교하는 속성이 있다.
여기에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격 상승과 하락이 동일하게 반영되지만 개인의 경우 상승에는 민감한 대신 하락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지난해 한은은 이 같은 기존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최근의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가 어떤 요소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지 검증해 보았다.
우선 소비자들의 구입 빈도가 높은 품목들은 의외로 최근의 체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통계청이 가계의 구입 빈도가 높은 품목만을 따로 분류해 발표하는 생활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오히려 크게 낮았기 때문이다. 주부들에게 영향이 큰 채소 등의 신선식품지수 또한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최근의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에 구입 빈도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이번에는 물가의 상승과 하락에 대한 민감도가 비대칭적인 점이 최근의 체감물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이를 위해 한때 독일 통계청이 사용한 방법으로, 품목에 따라 가격변화의 가중치를 달리 적용해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계산해봤다. 그 결과 한은이 조사한 체감물가 상승률에 상당히 근접한 결론을 얻었다.
이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은 데 비해 체감물가 상승률은 높은 것이 가격 상승에는 민감한 반면 하락에는 둔감하게 반응하는 가격인식의 비대칭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저유가의 영향이 특히 크다.
◇ 유가하락도 주 요인
올 상반기를 보면 국제유가는 전분기에 비해서는 소폭 올랐다. 그런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즉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한 것이다. 상반기 국제유가는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정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한은 분석에 의하면 상반기 유류 가격하락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8%포인트 정도 낮춘 것으로 분석됐다. 유가 하락만 없었더라도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1.6% 안팎이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는 소비자물가에서는 유류가격이 하락으로 집계됐지만 올들어 국제유가가 상승한 까닭에 개인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유가가 오른 것으로 반영된다. 즉 소비자물가는 일년전과 비교하지만 개인은 직전 구매시점의 가격과 비교하는 속성이 있고, 가격 상승에는 민감한 반면 하락에는 둔감한 비대칭성이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소비품목이나 품목별 지출비중 등 소비패턴이 가구마다 다른 점도 평균치와의 간극이 커지는 원인이 됐다. 이를테면 지난해 담뱃값 인상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6%포인트나 높였지만 각 가구는 흡연 여부나 흡연량에 따라 체감도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국회예산처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소비자들이 상품의 질적 향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상승분 전체를 물가상승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고 가격이 상승한 경우 가격상승에서 질적 향상이 차지한 부분을 제외하고 순수한 인플레이션 기여분만을 가격상승으로 반영한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가격상승분 전체를 물가상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을 통해 카메라의 성능이 개선되고, 그로인해 가격이 올랐다면 소비자물가지수에서는 이를 가격상승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개인은 가격이 올랐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다.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 정부 정책은 불신을 받게 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에 근거하는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도 신뢰를 잃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격을 좁히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