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어명을 빙자해, 즉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특정 예비후보에게 지역구를 옮기도록 회유·협박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18일 공개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발언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통화 상대방은 김성회 전 의원. 20대 총선에서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경기 화성 갑)에 공천 신청을 한 인물로, 두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화성병으로 옮기라고 종용하며 어르고 빰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사찰 의혹과 함께 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문제의 발언이 다수 포함돼 있어 충격적이다.
윤상현 의원은 "내가 대통령의 뜻이 어딘지 알잖아, 거긴 아니라니까"라고 이른바 'VIP'(대통령)의 뜻임을 언급한 뒤 "까불면 안된다니까,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라고 사실상 겁박했다. 뒤이어 전화 통화를 한 최경환 의원은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지원사격을 했다. 어명이니까 자리를 비키고, 그렇지 않으면 사약을 내리겠다는 통첩이나 다름없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당내 경선에서 후보자를 협박·유인하면 5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 237조(선거의 자유방해죄) 위반의 소지가 있다.
윤 의원은 "(지역구를 옮기면) 지역은 당연히 보장하지, 우리가 다 (후보로)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의원은 "그렇게 하면 우리가 도와드릴게"라고 거들었다.
화성 갑에서 화성 병으로 옮기면 친박브랜드로 포장해 공천을 보장하겠다는 제의인데, 이는 당내 경선에서 이익 또는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약속할 수 없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57조2(매수금지)에 어긋난다.
공천관리위원도 아닌 최·윤 두 의원이 특정 후보에게 '대통령의 뜻' 운운하며 공천을 보장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공조직을 무시하는 저급한 정치행태이자 정당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해당행위나 다름없다.
당내에서는 "후보자를 겁박하는 것은 범죄수준이며, 공천개입과 관련해 보이지 않는 손의 몸통이 드러났다", "이런 행태 자체가 총선 패배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기 화성 뿐 아니라 전국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공천 개입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오찬간담회에서 "자신은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며 계파를 부인했다.
"선거때 자기의 선거 마케팅으로 자신들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갖고 친박이라고 그랬다가…"라고 밝혔는데 후보들 스스로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계파논란을 양산한 것이라는 뉘앙스다. 그런데 친박브랜드로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친박 핵심인사의 회유성 발언이 공개되면서 박 대통령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은 바로 그들이 말한 '대통령의 뜻'이다.
공천개입이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친박 핵심들이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며 공천 전횡을 휘두른 것이 된다. 만일 대통령의 뜻이라면 청와대가 선거법 위반의 무리수를 감수하고 정치에 개입한 것을 의미하며 그동안의 계파청산 약속도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서청원 의원이 19일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이걸로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니다.
의혹과 불신은 덮거나 누른다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옆으로 삐져나오거나 세균이 증식하듯 커지기 마련이다.
정치불신과 계파갈등을 증폭시킬만한 문제의 발언이 당내 중진의원들의 입을 통해 공개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속시원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 검찰도 현행법 위반의 소지가 다분한 이번 사안에 대해 엄정한 수사로 진상규명의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