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 냄새 진동하는 축사 창고 쪽방엔 보일러 없어 전기장판 의존해 겨울 나
'만득이'로 불리며 19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지적 장애인 고모(47)씨가 농장주 부부로부터 폭행 등 학대를 당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고씨가 친인척들에게 구체적으로 학대 사실을 밝히기 시작해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말과 그가 일했던 축사 주변 주민 증언, 정황 등을 종합하면 농장주 김모(68)씨 부부가 고씨에게 가한 학대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추정된다.
우선 강도 높은 노동과 폭행 등 신체적 학대다.
고씨가 강제노역을 당한 축사에서는 현재 한우와 육우(거세한 젖소 수소) 40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하지만 2013∼2015년만 해도 연평균 100마리 안팎의 소를 사육한 것으로 확인됐다. 축사 관리는 농장주 김씨와 고씨 단 둘이 했는데, 사료를 주거나 분뇨를 치우는 궂은 일은 고스란히 고씨 몫이었다.
최근 경찰이 축사 내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고씨는 오전 5시 30분부터 하루 평균 12시가량 축사 일을 도맡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간중간 쉬기도 했겠지만 100여 마리의 소를 돌보는 중노동에 19년째 시달린 고씨의 다리에 행방불명 전에는 없던 하지정맥류가 생겼다고 게 친인척들의 전언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김씨 부부가 폭행을 가했다는 고씨의 진술도 나왔다.
고씨의 친척 A씨는 "(농장주가)막대기로 때리거나 방바닥을 두들기며 겁을 줘 도망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나흘 전인 지난 15일 복지 전문가, 상담가, 가족이 배석한 가운데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도 고씨는 주인에게 맞았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온 고씨의 몸 곳곳에서 크고 작은 상처가 다수 발견됐다고 그를 만난 친척은 전했다.
김씨 부부는 고씨에게 일을 제대로 안하면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는 방법으로도 학대를 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씨 부인은 지난 12일 고씨를 발견해 조사에 나선 경찰에 "혼자 하라고 시키면 안해서 밥을 안 준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도 품삯은 고사하고 일을 못 하면 끼니를 거르게 했다는 것이다.
고씨의 친척은 "19년 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져 앙상하더라"며 "반찬은 김치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하루에 한 두 번씩 조금만 주는 등 사실상 굶기다시피 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축사 인근 한 주민도 "고씨가 밥도 못 먹고 밖에 나와 있길래 농장주한테 가서 '일을 부려 먹으면서 밥도 안 주느냐'고 혼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고씨가 거주하던 축사 옆 창고 한켠을 개조해 만든 쪽방 역시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열악해 방치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97년 여름 소 중개업자의 손에 이끌려 김씨 농장으로 온 고씨는 처음 몇 해는 주인집 바로 옆방에서 지냈으나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날뻔했다는 이유로 축사 옆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쪽방으로 쫓겨났다. 2평 남짓한 이곳은 축사와 불과 3m도 떨어져 있지 않아 특히 여름에는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
20W(와트)짜리 전등 1개만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도배조차 하지 않았다.
쪽방에 보일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겨우 한 사람만 누울 수 있는 전기 장판이 깔려 있어 바닥 온기에만 의존해 한 겨울을 나야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 청원경찰서는 고씨의 피해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를 강제노역시킨 농장주 김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해 입건할 방침이다.
경찰은 고씨가 김씨의 축사로 오게 된 경위와 강제노역을 시키는 과정에서 가혹 행위는 없었는지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고씨는 1997년 천안의 한 양돈농장에서 일하다 행방불명된 뒤 19년간 김씨의 농장에서 무임금 강제노역을 당했다. 그러던 중 지난 1일 밤 축사를 뛰쳐나왔다가 경찰에 발견돼 어머니, 누나와 극적으로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