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 따르면, 이날 강제집행은 철거용역 40여 명이 투입된 가운데 20여 분 만에 끝났다. 앞서 지난 7일 리쌍 측은 용역 100여 명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시도했으나, 맘상모 회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된 바 있다.
이번 건물주 리쌍과 세입자 사이 분쟁은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미흡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의견은 '을의 횡포'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세입자를 비판하는 데 집중되는 분위기다.
사회 심리·갈등을 연구하는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에 "유명인이나 공인이 이해관계를 두고 분쟁을 하게 되면 여론의 지탄을 받아 왔다"며 "처음에는 유명인이 갑의 위치에, 세입자가 을의 위치에 서는 구도였는데 이런(여론의 지탄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명인이나 공인들에게 일종의 학습효과가 생겼다"고 운을 뗐다.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자신들이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 뒤로 소위 꼬투리 잡힐 수 있는 부분들을 회피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학습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그렇게 찾아낸 것이 '법'인데, 법에 있어서 절차상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이런 것을 처리하도록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라며 "리쌍의 경우도 그런 부분에 주의하면서 강제집행 등을 할 때 사전에 필요한 절차를 거쳤을 것이고, 법적으로 볼 때 문제될 소지가 굉장히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도 합법적인 조치를 모두 취한 상태에서조차 세입자가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은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만약에 리쌍이 이를 부당하거나 불법적으로 처리했다면 당연히 지탄을 받겠지만, 모든 계약 관계를 규정하는 법의 절차에 따른 만큼 누리꾼들 입장에서는 세입자의 입장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법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가법 역시 지난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개정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기본권보다는 재산권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윤 교수는 "법의 맹점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합법적인 절차를 취한다고 할지라도 그 법이 지닌 맹점 탓에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 확인을 한 이후에 누구를 비판하더라도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사실 SNS에서의 공론화 과정은 성찰적이고 숙의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쏠림이 강하기에 몇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고려 사항은 "첫째, 비록 을이라 할지라도 계약과 법에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법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에 피해를 주거나 과거에 만들어져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셋째, 사회에서 법대로만 하는 것은 갈등의 소지가 다분한 만큼 상대가 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 "경제적 이익에 대한 정당한 분배 원칙,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이번 리쌍의 강제집행 사건을 계기로 '젠트리피케이션', 즉 도심 개발의 가속화 탓에 집값·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사회 현상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혹자는 "지난 2009년 용산참사를 겪었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통탄하고 있다.
윤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가 보다 깊이 논의해 공론화를 거침으로써 실제적인 법제화로 나아가야 할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한 지역이 경제적으로 활성화되고 가치가 올라간 데는 그곳에서 먼저 사업을 하셨던 분들의 공로가 큰데도, 그 뒤에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계약이 끝났으니 나가'라고 할 경우 이익과 피해를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적 가치 상승에 기여한 부분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예를 들어 임대 계약기간 등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이 더 창출됐을 때 그것을 관계된 사람들에게 분배한다는 원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될 것인데, 이를 현실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건이 터지면 뜨거워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사회 상황에서는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회적 학습효과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하지 않고 전지전능하지 못하니 시행착오·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학습하고 개선하는 게 인간이 지닌 능력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 학습이 실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여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보수 정당에서는 건물주, 개발업자의 편을 들더라도 서민 정당을 자칭하는 야당에서조차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적 상황과 외국 사례 등을 잘 연구해 우리 사회에 적합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게 아니니, 강제력을 지닌 법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치권이 책임감을 갖고 법 개정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