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그게 맞습니까? (…) 극적으로 좀 도와주십시오. 극적으로…. 이렇게 지금 일적으로 어려울때 말이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녹취록 중)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공개된 '이정현 녹취록'.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 젖어있던 당시, KBS에서는 이 같은 통화와 함께 다음의 사건들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통화의 당사자였던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사임과 KBS 총파업입니다.
공영방송 KBS에서는 2년 전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2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세월호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하는 발언을 사석에서 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일로 김 전 보도국장은 5월 9일 사임했습니다.
문제는 김 전 보도국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기자회견에서 터졌습니다. 여기서 김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며 폭탄 발언을 한 겁니다.
이렇게 공영방송 외압의 '폭로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1주일 뒤인 5월 16일에는 항의의 뜻으로 보도본부 부장단이 전원 사퇴했습니다.
김 전 보도국장은 기자협회 총회에서도 다시 한 번 윗선의 보도개입 실태를 낱낱이 폭로합니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정치부장도 고민을 했는데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뉴스) 꼭지 늘리기 고민이었다."
"여당의 모 의원이 TV에서 얘기하는 날은 반드시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떤 이유가 있든 그 아이템을 소화하라. 일방적으로 할 수 없으니까 야당과 섞어서라도 해라. 누구라고 말을 안 해도 정치부 기자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고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을 헤아려보면 금방 알 것이다."
김 전 보도국장은 심지어 자신이 사임 기자회견을 했던 그날에도 길 전 사장이 기자회견 35분 전에 불러서 '대통령의 뜻이니까 사표를 내라'는 말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거역하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까지 회상했고요.
공영방송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직접 정부의 보도개입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 사장의 보도개입 파문과 총파업
KBS는 이 일로 8일간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양대노조가 길 전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했고, 기자협회는 제작거부에 돌입했습니다.
총파업 8일 만에 길 전 사장 해임제청안이 가결되면서 파업은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김 전 보도국장도 보도개입으로 4개월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았죠.
즉 종합해보면,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해경을 비판하는 뉴스를 내보냈다가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를 받고 사장이 보도국장에게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는 류의 일들이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벌어졌던 겁니다.
◇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
KBS 사장은 여당 측 이사 7명, 야당 측 이사 4명 총 11명 이사들의 추천으로 낙점되는 시스템입니다. MBC 이사회는 여야 6대 3, 총 9명의 이사로 이뤄져있습니다. 공영방송 사장과 간부들이 정부 여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무려 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도 길 전 사장은 지난 총선 직전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 의사를 밝혔었고, 이정현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는 등 여전히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20대 국회에서 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으며 관련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토론회를 갖고 공정언론특별위원회가 마련한 개선안을 공개했죠.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여야 비율을 일정하게 맞추는 등의 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입니다. 과연 이 오래된 과제가 이번 국회에서는 해결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