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 중 하나가 삼지창처럼 생긴 당파다. 사극을 통해서만 당파를 접한 사람들의 눈에는 대단치 않은 무기로 보이지만,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무기로, 담력이 강한 병사들만 사용한 특수 무기였다. 그런데 사극에 아무런 기준 없이 등장하면서 민속촌이나 역사 관련 테마파크 등에서 문지기나 포졸들도 당파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당파를 조선군의 보편적인 무기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 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말도 안 된다. 우선, 칼은 기병의 대표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전통 시대 기병은 적이 원거리에 있으면 활로, 근접해 있으면 창이나 마상월도, 혹은 마상편곤과 같은 무기로 공격했다. 환도는 지금으로 치면 권총과 같은 일종의 보조 무기였다. 게다가 환도는 띠돈이라는 360도 회전 가능한 고리에 달아 허리에 차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야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처럼 기병이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면 칼이나 칼집으로 말을 때리며 달리게 된다. 전투마가 칼집을 채찍으로 이해해 버리면, 기병이 칼을 뽑아 휘두르는 순간 말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인 줄 알고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낙마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사극을 통해 자리 잡은 우리 머릿속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오래되고 비체계적인 경우가 많다. 불과 몇백 년 전의 군대와 전쟁이라고 해도 군사 개개인의 무예 실력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전쟁을 떠올리곤 한다. 수천 년 전부터 고도로 훈련되고 조직화된 군대를 운용해온 것이 사실임에도 사극에서는 개개인의 용맹을 드러내기 바쁘다. 잘못 만들어진 전통 시대 군사와 전쟁에 대한 모습은 텔레비전 사극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거의 고착된 상태다.
조선 후기에는 검계(劍契)라는 폭력 조직이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조직폭력배와 같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들도 오(伍)와 열(列), 즉 대형을 맞춰 싸우는 훈련을 했다. 전통 시대 군사로 선발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하는 것이었다. 오와 열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다양한 진법을 구상할 수 없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순신의 학익진도 오와 열을 맞추지 않고는 구사할 수 없다. 그런데 사극에서 보이는 모습대로라면 이순신은 전술 전략도 없이 불나방처럼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가 될 것이고, 그의 군사들은 조직폭력배보다 못한 오합지졸이 될 것이다. 영웅적인 주인공, 화려한 화면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 선조들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은 호국과 충효, 항일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위인의 대표 조각상이다. 그런데 그런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것은 중국식 견박형 갑옷이다. 갑옷은 시기마다 형태와 재질이 바뀌어왔다. 그래서 어떤 갑옷을 본다면 어느 나라, 어느 시기의 것인지 가늠할 수 있고 군대와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국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갑옷뿐 아니라 한 손에 든 칼로 땅을 짚고 있는 자세도 잘못되어 있다. 잘못 고증된 우리나라 사극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도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어깨에 한 겹이 더해진 견박형 갑옷은 지금도 조선시대 사극에서 대표적인 장수들의 갑옷으로 등장하고 있다. 잘못 고증된 갑옷이 문제되는 다른 이유는, 제작 비용 때문이다. 갑옷은 제작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 번 만든 갑옷은 계속 반복해서 사용된다. 잘못 고증된 갑옷도 무차별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청풍명월>(2003)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잘못된 갑옷이 아무런 수정 없이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등장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갑옷이 대중의 인식에 박히고, 고증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나중에는 이순신이 일본도를 들고 나라를 지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극 고증 오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사극이 자꾸 고증을 무시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르로 변해가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므로,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사전 제작이 필요하다. 소위 ‘쪽 대본’으로는 제대로 된 고증이 불가능하다. 셋째, 시대별·영역별 자문회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일회용 자문회의가 아니라 언제든 필요한 사람은 소속 방송국에 상관없이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상설 자문회의가 있어야 한다. 넷째,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하고, 다섯째, 조연출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이들이 방송의 ‘디테일’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미술과 소도구의 체계적 제작과 관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지금 방송국 소품실에 쌓여 있는 엉터리 무기와 갑옷 대신 제대로 만든 소도구들로 소품실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계와 시청자의 비판이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사극의 역사 왜곡은 사라질 것이다.
최형국 지음/인물과 사상사/236쪽/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