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장순욱 부장판사)는 대만 국적의 왕 모(58) 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무부는 귀화 불허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왕 씨는 한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대만 국적으로 살아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형제들과는 달리 왕 씨만 대만 국적으로 남아있게 된 사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 씨는 지난 1995년 7월 지인과 함께 두 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깊이 뉘우친 왕 씨는 두 번 다시 마약에 손을 대지 않고 사업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이후 왕 씨는 2014년 3월 법무부에 귀화 신청을 했지만, 마약 전과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법무부가 왕 씨의 범죄 전력을 문제 삼아 '국적법상 품행 단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허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왕 씨는 "술기운과 호기심에 마약범죄를 저지르게 됐으나 잘못을 깊이 반성해 20년 간 같은 범죄는 물론이고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법원에 불복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이라며 왕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품행 단정 요건은 귀화신청에 대한 처분을 할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과거 한 번이라도 범죄전력이 있으면 평생 귀화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기준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왕 씨의 필로폰 투약 횟수가 2회에 그치는 등 상습적으로 투약하지 않았고, 20년 남짓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또한 한국에서 장기간 거주해오면서 불법체류를 하거나 세금을 체납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20년 전 저지른 마약범죄 전력이 왕 씨를 국가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 지장이 있는 품성과 행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