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행방불명 처리…"신원조회했으면 범죄 인지 빨랐을 것"
청주에서 발생한 이른바 '축사 노예'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초동대처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축사 노예' 상태를 벗어나려고 도망친 피해자를 발견하고도 신원 조사 없이 강제노역을 시킨 노부부에게 넘겼다가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14일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가진 A(47)씨가 임금을 주지 않고 강제노역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조사 중이다.
A씨는 1997년부터 최근까지 김모(68)씨 부부가 운영하는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한 젖소 축사에서 일했다.
그는 마을 주민 사이에서 '만득이'로 불리며 축사 옆 창고에 딸린 약 6.6㎡짜리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김씨 부부가 A씨를 데려다 20년간 강제노역한 사실은 지난 1일 오후 9시께 비를 피하려던 A씨가 축사 인근 한 공장에 들어갔다가 경보기를 건드리면서 밝혀졌다.
경보음에 출동한 사설 경비업체 직원은 A씨를 경찰에 넘겼다.
신원 등을 묻는 경찰의 질문에 A씨는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어눌한 말투로 "주인이 무서워 도망쳤다"며 횡설수설했다.
경찰은 판단력이 흐린 A씨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신원 조회 절차 없이 주민들에게 물어 그를 김씨 부부에게 인계했다.
하지만 A씨는 20년여 년 전 행방불명 처리가 된 상태여서 당시 제대로 신원 조회가 이뤄졌다면 김씨 부부의 범죄 혐의점을 좀 더 일찍 확인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경찰 수사는 그로부터 1주일 뒤에야 시작됐다.
A씨를 만났던 게 계속 꺼림찍했던 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 9일부터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에 나섰다.
뒤늦게 무임금 노역 정황을 포착한 이들은 지난 12일 피해자인 A씨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김씨 농장을 찾았다.
그러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A씨가 경찰을 보고 달아나는 바람에 신병 확보에 실패했다.
결국 피해자 없이 다음 날 김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경찰은 "A씨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았다"는 김씨의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다만 "감금이나 강제로 일을 시킨 적은 없다"고 일부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도망 이틀 만인 14일 오후 2시께 인근 마을에서 발견됐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라 경찰이 조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적 장애를 가진 A씨가 대인기피 증세도 보여 정상적인 조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병원에서 1∼2일 안정을 취한 뒤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동대처 부실 논란에 대해서는 "지적 장애를 가진 A씨와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웠고, 범죄 혐의점이 없어 지문 조회 등을 할 수 있는 상황도 못됐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