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가요 프로그램…'문제 투성이'

(사진=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반쪽짜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기자와 만난 한 가수는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뼈 있는 말이다. 실제로 가요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외면 받고 있다. 애국가 시청률로 불리는 3%대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청률은 수년째 바닥을 치고 있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으나, 정작 K-팝 스타들이 출연하는 가요 프로그램은 자국에서 찬밥 신세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가요 프로그램을 합치면 총 여섯 개나 된다. SBS MTV '더쇼'부터, MBC뮤직 '쇼챔피언', Mnet '엠카운트다운',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방송된다. 그야말로 범람수준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는 별반 차이가 없다. 진행자와 무대 구성만 다를 뿐 출연자 명단은 비슷비슷하고, 약속이나 한 듯 지나치게 아이돌 그룹에 편중되어 있다. 출연자 명단의 8~90%가 아이돌 그룹일 정도다. "장르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개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출연자 선정 기준부터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인기가 있다고 해서, 혹은 노래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출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작진은 각 기획사 관계자들과 주 1회씩 이른바 '페이스 타임'을 갖고 출연자 명단을 정한다. '뮤직뱅크'를 비롯해 대부분 월요일에 진행되는데, 적게는 70명 많게는 100명의 매니저가 CP, PD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 고작 1분 남짓 정도 되는 시간 안에 자사 소속 가수가 출연해야 하는 이유를 제작진에게 설명해야 한다.

한 기획사 대표는 "신곡 발표 두 달 전부터 페이스타임을 돈다. 제작진이 누가 왔었는지 일일이 출석체크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규모가 적은 중, 소형 기획사일수록 불만은 더욱 크다. 한 기획사 홍보팀장은 "보통 신인급은 오프닝 무대에 서는데, 대형 기획사 소속 신인 가수는 상대적으로 더 큰 주목을 받는 후반부에 배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표했다.


지상파의 경우 '카우치 사건' 이후 10년째 밴드 섭외를 기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록밴드가 소속된 한 기획사 관계자는 "말이 좋아 뮤직뱅크고 음악중심이지, 그 안에 음악은 없다"고 꼬집었다. 어렵게 출연 기회를 잡아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주기 힘들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여건상 '핸드 싱크'(직접 연주하지 않고 MR에 맞춰 공연하는 행위)를 할수밖에 없고, 3~4분여 분량의 원곡을 2분 내외로 잘라내야 한다.

'케이블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교적 최근에는 Mnet '프로듀스101'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오아이가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 데뷔 3주 만에 KBS '뮤직뱅크'에 출연하며 한을 풀었으나, S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무대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다. 덧붙여 동방신기 출신 JYJ도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없이 특정 연예인의 프로그램 출연을 막는 것을 금지하는 방송법 개정안 이른바 'JYJ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1위 가수가 뒤바뀌는 어이없는 일도 발생,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까지 추락했다. 공영방송인 KBS '뮤직뱅크'에서 일어난 일이다. '뮤직뱅크' 제작진은 지난 5월 27일 방송된 K-차트 순위를 나흘 만에 정정했다. 음반점수를 집계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고, 합산 과정에서 순위집계담당자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1위는 걸그룹 AOA에서 트와이스로 바뀌었다. 트로피를 반납하는 이도, 뒤늦게 손에 거머쥔 이도 쓴웃음을 지을 만할 초유의 해프닝이었다.

이로 인해 '순위제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MBC '쇼! 음악중심'이 "각종 음원차트를 통해 집계 순위가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상황에서 방송사에서 별도로 순위를 발표하는 의미와 중요성이 떨어졌다"며 폐지에 앞장섰다. 하지만, 나머지 방송사들은 여전히 순위제를 고집하고 있다. 1위 선정 기준도 제각각이라 팬들은 물론, 관계자들의 불신이 깊다.

개선해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지도 못한다. 폐지 수순을 밟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제작진은 '절대갑(甲)'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기획사 관계자는 "가수들이 신곡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가 한정되어 있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신인들은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면 설 자리가 없어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해당 방송사 예능에 출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쉽게 말해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애초에 아이돌 중심의 무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다양성 있는 음악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겠나"라며,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일이라 개선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문제점을 짚어낼 의미조차 없을 정도로 큰 상처가 나 있는 게 가요 프로그램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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