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자가 무장 강도의 표적이 되는가 하면 게임 속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던 소녀가 시체를 발견하고 도랑아래로 굴러 중상을 입기도 하는 등 각종 사건 사고에 노출되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포켓몬 고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애플 앱스토어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인기순위 1위, 매출순위 1위를, 구글플레이에서는 9일 매출 2위를 차지하며 유럽과 북미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게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닌텐도 계열사인 '포켓몬'과 함께 게임을 개발한 증강현실 게임 개발업체 '나이안틱'은 폭발적인 흥행에 글로벌 출시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로 한정시켰다가 7일부터 미국과 영국 등 유럽지역으로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나이안틱은 "포켓몬 고가 이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일지 몰랐다"며 서버 확충시까지 글로벌 출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5일 서비스가 시작됐다가 빠졌다. 나이안틱의 숨고르기 때문이긴 하지만 국내 사용자들은 미국 등 해외 앱스토어 계정을 이용해 게임을 내려받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는 구글지도와 연동해 증강현실(AR), 위치기반서비스(LBS)를 활용하는 게임이지만 한국 버전에서는 지도를 지원하지 않는다. 포켓몬을 잡기 위해서는 주변 지역을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야 하지만, 국내에서 사용할 경우 아예 지도가 나오지 않고 허허벌판만 있다.
그렇다면 포켓몬 고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구글은 다양한 서비스 확대를 위해 한국 측에 보다 세밀한 지도 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가 보안시설 노출 문제로 한국정부는 그동안 반출 허가를 거부해 왔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포켓몬 고는 한국에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가 없다. 현재 구글이 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지도는 구글 지도가 아닌 SK플래닛 M&C부문으로부터 제공받은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글로벌 서비스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 7개 정부 부처로 구성된 '공간정보 국외 반출 협의체'가 지난 달 22일 구글이 요청한 '대한민국 수치지도((5000분의 1 디지털 지도) 국외 반출' 승인 여부에 대한 회의를 가졌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구글이 국가 보안 시설을 흐릿하게 처리하면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국내 업체들의 부정적인 입장도 한몫 했다.
◇ 국가 보안시설 표기 문제 이면에 있는 국내 업체들의 구글 견제
정부 부처 협의체 회의에 앞서 지난달 14일 국토지리정보원이 주최한 국내 업계 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에서 국내 업체들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에는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KT, 현대엠엔소프트, 팅크웨어, 새한항업, 중앙항업, 네이버시스템, 포도 등 10개 업체가 참석했고, 공간정보산업협회, 공간정보산업진흥원, 한국공간정보산업협동조합 등이 관련기관이 청취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부분 공간정보를 활용한 지도 서비스를 주력 서비스로 하고 있는 업체와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곳들이었다.
국가 보안시설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일부 정부 부처의 입장과는 달리 이들 업체들은 입장이 사뭇 달랐다. 형평성 문제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글로벌 공룡 기업인 구글이나 애플이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디지털 공간정보 업체 관계자는 "모바일 퍼스트 환경에서 지도나 위치기반 서비스 등 공간정보를 활용한 서비스가 앞으로 중요한 먹거리가 될 것"이라면서 "글로벌 경쟁력에서 가장 앞서있는 구글이나 애플이 국내 시장에 이를 활용해 진출하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 보안시설 표기 문제로 구글 측에 5000분의 1 지도 제공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이 때문에 '디지털 쇄국정책'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8년 애플 아이폰3Gs가 한국에 처음 출시되면서 국내 통신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자 관련 기업들이 아이폰을 저지하기 위해 로비를 벌이면서 당시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 탑재를 의무화 하도록 하거나, 통신사의 데이터 사용 규제,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언락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들여올때 사용 적합성 검사를 받도록해 30~40만원의 검사비를 내도록 하는 전파인증 방식이 논란이 되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른바 '디지털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삼성이나 LG가 글로벌 시장 경쟁력에서 크게 뒤쳐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 해외 기업들 앞서가는데, 경쟁 두려워 '디지털 쇄국' 언제까지
포켓몬 고는 단순히 게임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MR(혼합 현실 Mixed Reality), LBS(위치 기반 서비스 Location-Based Service) 등 공간정보를 복합적으로 활용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미 증강현실 기술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상용화 된지 한참이 됐지만 사업모델이나 수익성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성장 가능성은 높게 평가되지만 가상현실(VR) 기술에 비해 성공적인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호주판은 포켓몬 고의 성공에 대해 "포켓몬 고는 AR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간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작용이 결합되어 대중 시장에 선보인 첫 번째 결과물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며 "이러한 변화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관련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증강현실을 도입한 이 새로운 시장의 크기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들과 매년 4000억달러 어치 판매되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경제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며 "포켓몬 고의 성공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기회를 가리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때 잘 나가던 국내 게임업체의 경쟁력은 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 늘 최고라 자부하던 국내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 분야에서도 턱 밑까지 추격해와 국내 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대세인 모바일 경쟁력도 플랫폼에서 완전히 밀려 콘텐츠와 서비스에서 승부를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국내에서는 최고라 자부하는 IT 기업들도 구글과 애플의 플랫폼에 잠식당해 이렇다할 선도적인 기술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전세계 점유율 80%를 장악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나머지 20%를 점유하고 있는 애플 iOS의 플랫폼 저변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를 이용해 새로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적극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에 지도 반출 규제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업체가 구글이나 애플 플랫폼을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해도 국내 지도 정보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구글이 요구하는 지도 반출은 안보를 위협하고 국내 지도기반 산업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의 지적에 "우리 네이버나 카카오를 보호하려는 입장에선 그렇게 (허가해주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사업 기회를 활용하려면 국내 업체보다는 구글 쪽 앱을 활용하는 게 좋으니까 국내에서도 의견이 좀 갈리는 것 같다"며 신중론을 견지했다.
구글이나 해외 민간 위성지도 서비스 업체들은 한국 위성지도에 보안시설에 대한 별다른 표기를 하지도 않고 흐릿하게 처리하지도 않는다. 국가 보안시설에 흐릿한 처리 방식 등은 북한이나 일부 특수한 국가를 제외하고 자유시장경제권에 있는 국가들 중 사실상 국내에서만 적용되는 규제로 해외에서는 대통령이 거처하는 청와대 경내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의 백악관이나 펜타곤(미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물론 오래 전부터 이를 외부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기술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구글이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정부가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ICT 산업의 커다란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중견 스타트업 관계자는 "군사적 보안 문제와 무역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보호무역, 글로벌 스탠다드 경쟁력 문제가 얽히고 설키면서 '디지털 쇄국정책'의 진부한 논란에 빠지는 사이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 잠식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데, 울타리만 치고 방안에 들어 앉으려는 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