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당국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발표한지 나흘이 지났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쇼핑에 한창인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중국 정부의 거센 반발에 잔뜩 긴장했던 국내 유통업계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 동요 없는 유커들, 사드 발표 이후에도 면세점 매출 신장
유통업계가 유커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들이 대체 불가능한 ‘큰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절반은 중국인(650만명)이었다.
씀씀이도 커서 12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를 쓰고 갔는데 1인당 소비액은 다른 외국인들의 두 배, 일본인보다는 6배 이상 많았다. 유커들은 국내 면세점에서 5조원 넘게 썼다. 전체 매출의 55%, 외국인 매출의 86%다.
지난해 6월 메르스의 공포가 1년 만에 사드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고 좌불안석이었던 면세점업계는 매출이 오히려 오름세를 보이면서 일단 한숨 돌린 모습이다.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사드 발표가 난 8일부터 10일까지 주말 매출이 전 주말보다 15% 가량 늘었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도 9~10일 하루 매출이 9억원을 넘어 전 주말보다 30% 가까이 신장됐다.
◇ “몰라요. 사드가 뭐예요”
12일 서울 도심 면세점에서 만난 다수의 유커들이 ‘사드를 아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10명 중 7명은 사드 자체를 몰랐다.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 방어체계라고 설명해주자 대다수의 유커들은 ‘정치적인 문제라 관심없다’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산동에서 온 장홍(여.40)씨는 "정치적인 문제에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 않다"면서 "갖고 싶었던 한국화장품을 사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 결정을 뉴스로 접했다는 심양에 사는 펑광저(남.43)씨도 “외교문제로 양국이 갈등을 빚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관광 문제와 연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쇼핑 여건이 잘 갖춰져 있어 사드 문제와 상관없이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 “양국 관계 악화되면 방한 쉽지 않을 것”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대부분의 유커들이 중국 정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가 악화된다면 지금처럼 한국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응답이 다수였다.
산동 출신의 쩌샤오페(여.31)씨는 "중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중국 안보를 위해 당연하다"면서 "한중 양국이 많이 친밀해졌는데 사드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중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와 언론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한다면 면세점 등 국내 유통 및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천진에서 온 장위앤롱(남.26)씨는 “중국 정부는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지금은 괜찮지만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면 신변 안전 때문이라도 한국 방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中 상응 조치 공언, 무역보복 대응책 마련 시급
중국은 올해 1~5월 우리나라에서 611억 달러 어치 이상을 수입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미국, 독일 등을 제치고 중국의 제1위 수입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 374억 달러 어치 넘게 수출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4위 수출국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이 강력한 무역 보복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1일 국회에 출석해 “대규모 보복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은 과거 일본, 필리핀, 베트남과의 영토분쟁 당시 경제 보복에 나선 전례가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마늘 파동으로 휴대전화 수입금지 등의 보복에 백기를 든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상응하는 조치를 공언했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90%가 제재에 찬성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교역 중단까지 요구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재진 연구위원은 12일 ‘중국의 대(對) 한국 보호무역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다시 경제보복에 나선다면 위생 검역 등 비관세장벽 강화, 통관 거부, 관광 제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면서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한·중FTA 활용과 기업간 파트너십 강화 등을 통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발발한 이후 1개월 정도가 지나 매장 주차장이 텅텅 비게 됐다”면서 “앞으로 1개월 뒤에도 유커들이 여전히 국내 면세점과 백화점을 가득 채울지 긴장의 끈을 놓지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