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씨는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니며 운동 효과 물론, 기름 값도 아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백 씨의 출퇴근길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다.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오히려 보행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백 씨는 "출·퇴근길에는 운전자들이 마음이 더 급해서인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로 직진할 때가 있다"며 "그럴 때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더 위험하다고 생각돼 차량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차량이 지나간 다음에 길을 건너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에는 모두 8589개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이 중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5457개에 달한다.
64%나 되는 비율인데 지난해 대전의 횡단보도에서는 무려 166건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에도 221건의 보행자가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1.6일에 1명꼴로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다치는 셈이다.
시민들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둔산동에서 만난 문혜숙(77·여) 씨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속도를 줄이지 않거나 양보하지 않는 운전자들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며 "오히려 그런 곳도 신호등이 설치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원래 보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로교통공단 대전충남지부 박현배 안전교육부 교수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24시간 내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청색 신호가 켜졌을 때만 보행자가 보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충돌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운전자가 서행하지 않거나 정지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며 "다른 교통 선진국은 보행자가 횡단하면 신호등이 없어도 반드시 서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횡단을 시작하는 보행자를 보호하지 않는 것은 범죄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