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쏘다니며 포켓몬 사냥 …미국 '포켓몬 고' 광풍

토요일인 9일 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대학본부 앞 광장 '메인 쿼드'.

어슴푸레한 불빛이 비치는 광장 곳곳에 스마트폰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연신 위로 밀어 올리는 사람들이 잇따라 나타나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증강현실(AR) 게임 앱 '포켓몬 고'가 깔린 스마트폰을 들고 포켓몬을 잡으러 온 이들이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나 중년 부부도 가끔 있었다.


이곳은 도서관이나 실험실이 없어서 평소 밤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포켓몬 고의 광풍이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미국 전역을 휩쓸면서 주말 한밤중에도 아이템을 얻고 포켓몬을 잡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됐다.

메인 쿼드 입구에 있는 로댕의 청동 캐스트 조각 '칼레의 시민들'은 포켓몬 고 아이템이 나오는 '포켓스톱'으로, 이곳 안쪽에 있는 채플 성당 '메모리얼 교회'는 포켓몬들끼리 대결을 벌일 수 있는 '체육관'으로 각각 지정됐다.

친구 2명과 함께 킥보드를 타고 포켓몬을 잡으러 나온 한 남학생은 "산책 겸해서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포켓몬을 잡으러 왔다"며 "보드를 타고 오면서 (포켓몬이 나오는) 알도 부화시켰다"고 자랑했다.

게이머가 포켓몬 알을 부화시키려면 걷거나 뛰는 등 방식으로 일정 속도(약 시속 30km) 미만으로 일정 거리(2∼5km)를 이동해야 한다.

이날 오후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시청 앞 광장에도 젊은 남녀 커플,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과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게임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광장 곳곳의 동상과 기념비에서 아이템을 얻고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야생 포켓몬'을 잡으려는 이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소인 제39번 부두의 데크에서는 바닷가나 호수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물 타입' 포켓몬을 잡으려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달 6일 호주와 미국에서 출시된 포켓몬 고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게이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으슥한 곳을 다니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주변 주민들에게 신고당한 사례가 곳곳에서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또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게이머들도 늘었다. 보통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포켓몬 고는 돌아다녀야만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미국 와이오밍주 농촌에 사는 10대 여성이 물 타입 포켓몬을 잡으려고 근처의 강에 갔다가 물에 빠진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례도 있다.

포켓몬 고 광풍이 범죄에 악용된 사례도 나왔다. 미국 미주리 주에서는 주변에 포켓몬을 불러 모으는 기능을 지닌 아이템을 인적이 드문 주차장에 설치해 두고 이를 찾아온 게이머들을 총으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무장강도 4명이 구속됐다.

사용자들이 엄청나게 몰리면서 이 게임의 서버는 출시 첫날인 6일부터 자주 장애를 겪고 있다. 서비스가 안정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면서 미국 언론매체들은 "지금까지 신기하지만, 실용성이 확실치 않은 신기술로 취급되던 AR과 LBS가 드디어 '주류 기술'의 반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포켓몬 고 출시에 힘입어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닌텐도 주가는 금요일인 8일 10% 올랐으며, 월요일인 11일에는 증시 개장 1시간도 안 돼 20% 이상 또 올랐다.

이 게임을 개발한 니앤틱(Niantic)은 접속이 어느 정도 안정화될 때까지 호주와 미국 이외 국가에서의 출시를 미루겠다고 밝혔으나, 일본 등 주요 시장에는 몇 달 이내에 서비스를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포켓몬 고가 한국에 언제쯤 서비스될지는 확실치 않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개발된 게임인데,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구글 지도 서비스를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니앤틱이 2012년 내놓은 첩보 게임 '인그레스'(Ingress)도 한국에서는 즐길 수 없다.

니앤틱은 2010년 구글의 사내벤처로 창립됐으며, 2015년 구글이 지주회사 알파벳 체제로 탈바꿈할 때 완전히 분사됐다. 구글뿐만 아니라 닌텐도와 더 포켓몬 컴퍼니로부터도 투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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