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개그맨이 쓴 개그계맨들의 분투기'

신간 '불꽃'

신간 '불꽃'은 개그맨이 쓴 첫 소설이자 개그계를 무대로 한 소설이라는 이슈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사람들을 웃겨서 먹고사는 개그맨들의 가슴 찡한 인생사가 일본 출판계,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불꽃'의 주인공들은 저자 마타요시 나오키가 한때 그랬듯 무명 개그맨이다. 소설의 내용은 인기 없는 젊은 개그맨들이 성공하고자 애쓰는 짠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주인공 도쿠나가와 가미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가혹한 경쟁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인기 없는 개그맨 도쿠나가는 아타미 불꽃축제의 한쪽 구석에서 열린 무대에 올라 콤비 개그를 한다. 그러나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과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열심히 준비한 개그는 묻혀버리고, 단 한명의 시선도 호응도 받지 못한다. 비참함을 느끼며 무대를 내려온 도쿠나가는 이윽고 열정적으로 개그하는 선배 가미야의 모습을 본다. 이날 처음 만난 가미야에게서 천부적인 재능과 개그를 향한 진심을 읽은 도쿠나가는 술자리에서 그에게 사제지간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가미야는 그 대신, 도쿠나가에게 자신의 전기(傳記)를 써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전기를 쓰기 위해 도쿠나가는 개그에 몰두한 가미야의 인생을 속속히 들여다보며, 그의 재능을 동경하기도 하고 때론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예능인으로서 자신도 역시 돌아본다.

두 사람은 모두 개그를 향한 열정이 가득하다. 특히 가미야는 자신만의 개그 철학이 확고한 인물로, 자나 깨나 웃기는 대사를 궁리한다. 술집이나 공원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개그를 연습하고, 남들과 다른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신념으로 개그를 향해 순수함과 고결함을 부르짖는다. 물론 가미야에게도 성공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다. 도쿠나가와 가미야는 열정으로 뭉쳐 서로를 격려하고 이해하지만 그들의 위치는 불안하기만 하다.


때로 세상은 너무 쉽게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을 가른다. 가미야와 도쿠나가는 10년에 걸쳐 개그에 매진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기와 공감을 얻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열띤 호응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의 재능없음을 한탄하며 고뇌한다. 재능은 가미야가 더 뛰어나지만 인기는 예상 외로 도쿠나가에게 먼저 찾아온다. 이를 지켜본 가미야는 제자의 개그를 평가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서서히 멀어진다. 스승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인기가 지속되지 않는 도쿠나가, 여전히 인기 없는 가미야, 그들의 인생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소설의 마지막은 오랜만에 나타난 가미야를 만나는 도쿠나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미야의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작가 마타요시가 만들어낸 개그맨 가미야의 삶이야말로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하는 진실하고 강렬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가미야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개그에 대한 열정으로 버무리며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이상적인 개그란 무엇인지, 삶을 살아내고 버텨내는 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펼쳐놓는 것이다.

작가는 답답한 현실에서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특별한 주인공들을 설정해두었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긴 무명 시절을 견딘 힘은 독서였다고 한다. 일거리가 거의 없어 궁핍했던 시절, 허기로 가득찬 배를 끌어안고 책을 읽으며 개그를 짰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에 드나들며 책을 읽었고, 도쿄의 기치죠지와 미타, 오기쿠보 지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구했다. 덕분에 이 거리의 서점주인들과 나란히 <진보초(도쿄의 헌책방/고서점 거리)의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머물던 작은 단칸방에는 사방 벽에 머리 높이너머까지 손때 묻은 문고판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읽은 책만 2천 권이 넘을 정도로 유명한 독서광이다.

매일 책을 읽고 개그 대본을 쓰던 무명 시절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지닌 소설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타요시는 없는 시간을 쪼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글을 써야했기 때문에 휴대전화에 문장을 만들곤 했다. 그 때문에 엄지손가락에 건초염이 생기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런 노력이 모여 집필한 '불꽃'은 개그맨이 쓴 독창적인 소설을 넘어 세련된 문장 구사, 높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고뇌, 성공에 대한 솔직한 열망, 그리고 뛰어난 작품성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의 청년들도 가혹한 경쟁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작가가 담은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에 대한 괴리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220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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