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노인이 있다. 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국가 재건의 시대를 살아왔던 노인이다. 그는 어렸을 때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했다. 아홉 살 나이에 첫 월급봉투를 받은 이후 도살업자 보조, 목수, 측량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독립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사람은 치매에 걸린 아내뿐이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를 만나러 요양 병원에 간다. 직접 만든 요리를 아내의 입에 넣어주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아내가 듣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아내가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며 그녀를 웃게 만든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아내를 돌본다.
그러다 문득 자기 또한 멀지 않은 미래에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린 적 없이 꿋꿋이 살아온 남자로서 기저귀를 차고 누워 지내는 삶은 용납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직접 관을 짜고, 추도문을 쓰고, 나무 묘비를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언장을 남기려고 하는데, 마침 잉크가 떨어진다. 노인은 유언장처럼 중요한 문서는 3대째 내려오는 딥펜으로 써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아들과 함께 잉크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잉크는 쓸모없게 되고, 결국 그럼프 노인은 오랫동안 혼자 간직해온 비밀을 가족들에게 털어놓게 된다. 과연 노인은 자신의 계획대로 장례식 준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영어로 그럼프(grump)는 ‘성격이 나쁜 사람’, ‘투덜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노인은 세상만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투덜거린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큼 가벼운 것들이 아니다. 노인은 요즘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들을 마구 사들이고,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판다고 말한다. 또한 냉동 음식과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간다고도 말한다. 현대인들은 늘 손에 쥐고 있는 조그마한 기계에서 나오는 불빛만 쳐다볼 뿐이지,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진심어린 눈빛 교환도 할 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 너무 많다고 투덜댄다. 살다 보면 누구나 고만고만한 걱정거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마치 커다란 일인 것처럼 떠벌리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인은 이 모든 현상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해버린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커피에 크림을 타서 마시면 된다. 슬픈 일이 있으면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면 된다”고 말이다. 그는 평생 동안 7번의 외식을 했고, 샤워는 사람이 딱 적당한 정도로 깨끗해질 수 있는 12초 동안만 한다. 이토록 단출하고 정갈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독자들은 노인의 투덜거림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일생을 충실히 살아온 한 남자의 깊은 통찰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한 거기에는 600년이 넘도록 스웨덴의 속국이었고, 제정 러시아의 통치를 100년 이상 받았고, 소련의 재침략을 물리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인의 ‘시수(sisu, 핀란드인들의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일컫는 핀란드어)’가 담겨 있다. 또한 전쟁 후 폐허에서 지금의 복지 선진 국가를 만들어낸 산업 역군으로서의 자부심도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은근과 끈기와 닮아 있다. 이것이 우리가 더욱 그럼프 노인에게 끌리는 이유이다.
그럼프 노인은 한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것처럼, 죽음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준비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너무나 담담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의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거기에는 어떠한 거짓과 허세도 들어가 있지 않다. 노인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억지 울음을 금지하고 거짓으로 자신을 칭송하는 듯한 말투도 쓰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그렇게 추도문은 아름다운 수필이 되고, 묘비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고, 나무로 짠 관은 레이스와 벨벳으로 장식되어 멋진 목공예 작품이 된다.
독자들은 그럼프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존재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족 사랑을 느끼게 된다. 무뚝뚝한 늙은 남자가 내면 깊이 간직해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사랑’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이 책이 “비장한 코미디이며 해학으로 위장한 죽음의 서정시”라고 평한다.
책 속으로
관을 짤 나무를 베어놓은 뒤 벌써 올림픽이 여러 번 치러졌다. 외양간 앞에서 나무를 말린 뒤에 다락에 놔둔 지도 13년이 지났다. 반은 소나무이고 반은 자작나무다. 목재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휘게 하려면 연중 언제 베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누울 관에는 페인트칠, 대패질이나 왁스 칠을 하지 않고 벨벳 위에 아내가 내 이름의 이니셜을 수놓아준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내 담요를 깔 것이다. 담요는 아름답지는 않아도 부드럽고 따뜻하다. 내 아내의 관에는 대패질과 왁스 칠을 하고 무늬를 새길 것이다. 무늬를 만드는 끌로 레이스 문양을 만들어줄 것이다. 흰색이어야만 한다. 아내도 그렇게 해주길 바랄 것이다.
-36쪽
이 펜을 40년 전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출을 받을 때 한 번 사용했다고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이후 3년 동안 나는 매달 월급봉투를 은행장에게 직접 가져다주었고, 찻잔에 담아 내온 커피는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은행에서 돈을 빌렸건 아버지가 빌려 주었던 간에 빚이 무거운 짐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선 의무를 다해야 하고, 친구가 되는 것은 나중 일이다.
-50쪽
작은 기계와 거기서 나오는 불빛은 쳐다보지만 대화 상대의 눈은 쳐다보지 않는다. 협의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악수로 끝냈다. 하지만 이제 터치와 밀어서 하는 잠금 해제 기능 때문에 이런 예절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땀에 축축하게 젖어 죽은 물고기처럼 느껴지는 손으로 잡는 둥 마는 둥 악수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55쪽
추도문에서 고인의 인생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고인 자신밖에 없다. 시인들이나 쓸 법한 미사여구, 친척들의 미화나 기자의 무미건조한 기사보다 나는 내 자신의 말을 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에 나의 추도문을 쓸 준비를 해왔다. 도서관에서 신문에 실린 추도문들 중에서 나쁜 문구와 눈에 띈 훌륭한 문구들을 베껴서 기록해두었다. 그중에서 최고는 힐피 마레티 뤼외나의 추도문이었는데 아쉽게도 어떤 문구였는지, 그 종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필로 초안을 썼다. 잉크를 사고 나면 깨끗하게 다시 잘 써서 은행 금고에 잘 보관해두려고 한다. 또 지역신문에도 알려두고,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난 뒤에 열어보라고 할 생각이다. 아들이 초안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을 봐줘야 할 것이다. 요새 신문사들의 교정 실력은 믿을 수 없다. 교정자가 없기 때문이다.
-74~75쪽
도마뱀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거나 핀란드가 장거리달리기 종목에서 다시 메달권에 든다 해도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얼굴 표정은 거창한 말과 같아서 극한의 위기에 처한 경우에만 사용하여야 한다. 어떤 일이나 물건, 사람을 훌륭하고 소중하다고 이미 말해버린 후에, 정말 훌륭하고 소중한 물건이나 사람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1969년 가을 아내가 드레스가 예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나와 아내 사이에는 불편한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아내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빨면 줄어들 것 같고 입기에도 좀 불편해 보인다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내는 내 대답이 듣기 싫었는지 그날 저녁 유난스러울 정도로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설거지를 했다.
-121~122쪽
한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내 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기가 틀렸다. 너무 어두운 곳에서 만들어서 색도 내가 원하는 색이 아니다. 나는 관을 해체해서 목재, 천, 장식 레이스와 경첩 등 중에서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있다.
선물을 만들어야겠다. 아들과 며느리의 막내 아이에게 줄 아기 침대를 만들면 좋겠다. 잠이 잘 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아기 침대를.
-296쪽
투오마스 퀴뢰 지음/이지영 옮김/세종서적/304쪽/1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