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하루 종일 촬영에 투입되는 고된 노동환경은 물론, 선정적이고 잔인한 배역이 어린 배우들의 정서에 해로울 수 있지만 이와 관련한 상담치료나 사후관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선정적인 연기 후에도 정신상담이나 치료는 전무(全無), 모두 부모의 몫
지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는 대한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와 ‘소아청소년배우의 배역 후유증 예방 및 치유 MOU(양해각서)'를 맺었다.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에서 아역배우들이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는 배역에 투입되면서 아역배우들의 사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채 2년도 안 돼 폐지됐다. 수요가 적어 정식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예산을 받아내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역배우에 대한 정부와 유관기관 차원의 사후 상담이나 치료 시스템은 전무한 상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곡성'에서도 아역배우가 자극적인 배역을 소화하며 흥행을 이끌었지만 연기를 마친 뒤 아이를 전문적으로 상담 관리할 국가적 시스템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아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A(7) 양의 어머니는 "활동을 하다보면 단편영화나 극에는 선정적인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온다"며 "아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무섭고 공포를 느끼지 않겠냐"며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영화계 관계자들도 아역배우들의 후유증을 관리할 국가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한 최기윤 감독은 "아역들이 수위가 세거나 폭력적인 영화에 노출이 됐을 때 이를 보호하는 법적 규정은 전혀 없다"며 "그나마 현장에서 스태프끼리 서로 배려하거나 부모들이 아이가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남기연 단국대 법학과 교수도 "캘리포니아는 주법으로 아동청소년배우들의 정서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는 촬영 당시는 물론 이후로도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성인배우도 연기 후 배역의 잔상이 남아있는데 아역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2012년에 아역배우들의 정신상담 사업을 추진했으나 영화 도가니 이후 급하게 만든 것이라 지속 사업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며 "중요한 일인 것은 알지만 전체적인 영화산업 현안을 두고 보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어 정식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행 아동 복지법에는 "흥행을 목적으로 아동의 건강에 해를 끼쳐선 안되고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아무런 제제가 없어 유명 무실한 법조항에 그치고 있다.
◇ "공부요? 배부른 소리죠" 개인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해
아역배우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B(8) 양의 어머니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극촬영 때 아이를 아침 6시에 불러서는 밤 12시18분에 보냈다"며 "아이가 너무 지쳐서 사극은 다시는 찍을 생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A 양의 어머니도 "물론 대우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며 "어른하고 똑같이 대하다보니 아이는 지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외국의 아역관리실태와 비교하면 국내아역배우의 노동환경은 더욱 초라해진다.
미국의 아동노동법은 아동의 나이에 따라 근무시간과 촬영현장의 체류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생후 2세까지의 아동은 하루에 최대 2시간을 촬영할 수 있으며 고용장소에서 최대 4시간만 체류할 수 있다.
학교를 다니게 되는 생후 6세 아동부터는 학기 중과 학기 외의 근무시간을 구분해 놓고 있는데 학기 중에는 하루 4시간 활동, 3시간 공부시간 보장, 1시간 휴식을 법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18세미만의 아동청소년 연예인들은 밤 10시부터 새벽5시 사이의 근무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해 실제로 2011년 12월에는 아이돌 그룹 카라의 멤버 강지영 씨가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이유로 밤 10시에 열린 일본 후지TV 카라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국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15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의 근로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부모나 본인의 동의가 있을 경우 연장근무를 가능케 해놓았다.
하나의 작품이 아쉬운 을의 입장에 있는 아역배우들의 처지에서 연장근무를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