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개돼지 사육부'였나…하늘 찌르는 국민적 분노
교육부는 9일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나향욱(47) 정책기획관을 대기발령 조치하는 한편 "경위를 조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나 기획관을 비롯, 문제의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대변인실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발언 경위 등에 대한 자체 감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국장급(1~3급)으로 승진한 나 기획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구조조정 같은 굵직한 정책마다 기획과 조정의 핵심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친(親)서민 교육정책'을 홍보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경향신문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반(反)서민' 발언들을 늘어놓으며 파문을 일으켰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나 기획관은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99%의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나는 1%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19살 청년에 대해서도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며 "출발선상이 다른데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란 게 있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즉각 파면하라"…'교육부 해체' 주장도
이같은 발언들이 이날 해당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곧바로 성명을 내어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국가에 대한 충성 의무를 저버린 행위이자 반역의 패륜"이라고 성토했다.
교수들은 나 기획관의 즉각 파면과 함께 "부하 직원의 반역 행위를 막지 못한 교육부 장관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육운동연대 같은 단체들도 나 기획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연대서명에 돌입했다. 전교조는 특히 "교육 경력 없는 고시 출신 관료들이 좌우하는 우리 교육에 미래는 없다"며 "교육부를 해체하고 정권 간섭에서 자유로운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치권 역시 이번 파문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개인 일탈로 빗발치는 국민 분노만 피하고 나면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교육부의 책임을 물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당도 "헌법에 대한 정면부정이자 명백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며 즉각 파면을 촉구했고, 정의당 역시 "이같은 망언이 더 심각한 건 박근혜정부 아래에서 일상사가 돼가고 있다는 점"이라며 가세했다.
이에 따라 당장 11일부터 이번주 내내 국회에서 열리는 상임위 및 예결위 전체회의도 나 기획관의 발언과 국정교과서 강행 등 교육부의 그간 행태에 대한 '성토장'이 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이날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납작 엎드린 것도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작 내부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미온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설마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그렇게 표현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며 "업무적인 자리도 아니고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말이 엉키면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억울해했다.
나 기획관 스스로도 이날 일부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술에 취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민중이 개나 돼지 같다는 발언은 영화에 그런 대사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신분제 발언에 대해서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실이 있으니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복지정책을 펴든지 해야 될 것 아니냐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기획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자체 감사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다른 비리 사건과 달리 당사자들의 '해명' 외에 별다른 조사 대상도 없는 이번 감사가 '제 식구 감싸기' 수순이 될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이미 "해당 공무원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음한 상태로 기자와 논쟁을 벌이다 실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이번 파문을 규정한 만큼, '취중실언'에 상응하는 수준의 조치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대화내용 전문 |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나향욱 정책기획관)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해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 1% 대 99% 할 때 그 99%? “그렇다.” - 기획관은 어디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기획관 자녀도 비정규직이 돼서 99%로 살 수 있다. 그게 남의 일 같나? (정확한 답은 들리지 않았으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는 취지로 대답) -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 지금 말한 게 진짜 본인 소신인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 이 나라 교육부에 이런 생각을 가진 공무원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다니…. 그래도 이 정부가 겉으로라도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아이고…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경향신문 기자들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따라온 교육부 대변인과 과장이 “해명이라도 들어보시라”고 만류, 다시 돌아가 앉았다. 이때부터는 휴대폰 녹음기능을 틀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 기획관은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편하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조금전 발언 실언이냐, 본인 생각이냐. “(휴대폰을 가리키며) 일단 그거 꺼라.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 것도 있고. 내 생각은 미국은 신분사회가 이렇게 돼 있는데, 이런 사회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이런 얘길 한 것이다. ‘네 애가 구의역 사고당한 애처럼 그렇게 될지 모르는데’ 하셨는데, 나도 그런 사회 싫다. 그런 사회 싫은데, 그런 애가 안 생기기 위해서라도 상하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고… 상과 하 간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사회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냐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 사회안전망을 만든다는 것과 민중을 개·돼지로 보고 먹이를 주겠다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이 사회가 그래도 나아지려면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냐라고 얘기한 거다.” - 정식으로 해명할 기회를 주겠다. 다시 말해 봐라. “공식적인 질문이면… 그거 끄고 하자.” - 본인의 생각이 떳떳하면 왜 말을 못하는가. 개인 생각과 공무원으로서의 생각이 다른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데… 지금은 말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