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포고의 상징인 '무감독 시험제' 시행 60주년을 맞아 이 학교 출신 동문 교육학자 4명이 공동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6일 교육계에 따르면 진동섭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와 김홍원 한국교육개발원 박사, 이윤식 인천대 교수, 황규호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한국교육학회 연차 학술대회에서 '제물포고 무감독 시험 60년의 의미와 성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제물포고 총동문회 의뢰로, 올해 시행 60주년이 된 무감독 시험제가 그동안 재학생과 학부모, 교사, 동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한 것이다.
대통령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을 지내고 현재 한국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진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동문회 차원에서 추진된 연구이긴 하지만 경쟁 위주 사회 속에서 제도를 60년간 이어온 것 자체가 교육적,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무감독 시험제는 말 그대로 감독관 없이 시험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시험 시작 5분 전에 감독교사가 입실해 학생들에게 가방, 책 등 소지품을 교실 앞뒤로 정리하고 책상 속을 비우게 한다.
예비령이 울리면 학생들은 다같이 "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라는 구호를 제창한다.
이어 본령이 울리면 교사는 답안지 기재사항에 날인한 뒤 여분 답안지와 문제지를 회수해 퇴실한다.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무감독 시험제는 1956년 3월 길영희 초대 교장이 내세운 '허위 없는 사회 건설을 위한 구국 운동' 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길 교장은 학교 교지인 '춘추' 제2호에 게재한 격려사에서 "우리 학교 안에서부터 허위의 악습을 제거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무감독 시험제가 성공하면 제고생에게는 한국 학도로서 칭찬받을 자격이 부여되고, 실패하면 제고의 영광은 영원히 말살되고 말 것이다…이 제도를 영원한 우리의 전통으로 살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진실한 나라라는 칭찬을 받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썼다.
우려와 반대도 많았지만 길 교장이 제도의 성공을 확신한 근거는 시행 첫해 평균 60점 이하 낙제생이 53명이나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길 교장은 이 낙제생들을 '제고의 영웅'이라 칭하면서 전교생들 앞에서 칭찬하고 1년간 학비를 면제해 줬다고 한다.
학생들의 양심을 믿는 이 제도는 실제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 사실이 설문조사 결과로도 확인됐다.
연구진이 재학생 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 정직하게 시험을 볼 것이다'(5점 척도에 4.42점), '양심적으로 생활하려 노력할 것이다'(4.14점), '성실하게 생활하려 노력할 것이다'(4.12) 등 문항에 높은 점수로 답했다.
동문 1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도 비슷했다.
동문들은 특히 '고교 3년간의 정신과 습관을 통해 대학, 사회에서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생활하도록 노력했다' '동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무감독 시험제는 동문 간 결속력을 강화하는 끈이다' 등 긍정적 답변을 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내신 성적이 중시되는 현실에서 모든 학생이 양심을 지키며 성공적으로 이 제도를 이어간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일"이라며 "사회 전반에 이런 정신과 가치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가 실제 학생들의 도덕성, 가치관, 생활태도, 친구·교사와의 관계, 학교폭력 감소, 학업성취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 심층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진 교수는 "모교에 대한 헌정 의미도 있는 만큼 연구 내용이 아주 엄밀하고 객관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단위학교 차원을 넘어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