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3시쯤 부산 영도구 부산해양경비안전서 부두에 정박해 있던 해경 소속 방제정(450t)에 선상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베트남인 A(32), B(32)씨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나타났다.
포승줄 차림의 피의자들 중 B씨는 취재진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잘못했다는 듯 참회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들은 광현 803호와 구조가 비슷한 방제정의 조타실과 갑판, 침실 등을 돌며 범행 순간을 재연했다.
작은 체구에 순간순간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베트남 선원들에게서는 잔혹한 살해를 저지른 범죄자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담담하게 지난달 20일 선상 회식 자리에서 선장과 말다툼을 벌인 장면과, 조타실과 침실에서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하는 과정을 재연했다.
특히 피의자 A씨는 현장 검증 내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만취 상태였다"는 말을 되풀이하기도 해 다른 피의자인 B씨의 진술에 의존해 현장 검증이 진행됐다.
현장 검증에는 숨진 선장과 기관장 유족은 참석하지 않았다.
◇ 현장 검증에서 항해사와 피의자들 진술 엇갈리기도…
다만 이 사건의 최초 신고자이자,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항해사 이모(50)씨가 함께해 당시 피의자들을 제압했던 상황을 재연했다.
항해사 이씨는 이들이 흉기를 들고 자신을 위협하며 "(조타실에서)나와, 나와"를 외쳤고, 조타실 밖에서 칼을 빼앗기 위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의자 중 1명은 "'나와, 나와'는 범행을 자백하기 위해 항해사에게 나오라"고 한 것이라며 "항해사를 위협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고 받아쳤다.
한편, 이씨는 이날 현장 검증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배고프지도 잠도 오지 않는다"면서 "사건 당일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던 선장과 기관장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평소 조업 시 피의자들과 자신과의 관계는 원만했다"며 "피의자들은 평소 문제를 많이 일으키거나 포악한 성격은 아니었는데, 선장이나 기관장이 죽지 않을 경우 보복을 당하는 게 무서워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1시간여 진행된 현장검증 내용을 바탕으로 해경은 추가 조사를 진행한 뒤, 오는 8일쯤 피의자들을 살인과 특수폭행·협박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