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들의 '성(性) 문화 향유기'

신간 '내 안의 음란마귀'

'내 안의 음란마귀'는 '두 아재의 거시기하고 거시기한 썰'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8,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두 저자가 나누는 성 문화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자 성인물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표범처럼 야한 잡지와 빨간 비디오테이프를 찾아 해질녘 세운상가를 어슬렁거려본 경험이 있다면, 유쾌하고 정겹기까지 한 이 책의 등장이 무척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플레이보이> 주세요." "그건 별로 재미없어. 더 재미있는 걸로 줄게." 씩 웃으며 손수레 아래 어딘가에서 슬쩍 빼 누런 종이봉투에 아저씨가 넣어준 <클럽>.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봉석은 그렇게 인생의 첫 포르노잡지를 손에 넣었다. 마치 어른이 된 듯한 쾌감을 선사했던 작은 일탈. 또래의 대부분이 그랬듯 성인잡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여러 분야의 19금 작품들을 습득해나간 그는, 이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적 체험들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대중문화평론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만화가 현태준은 어떠한가. 누나가 보던 여성지에 간간이 등장하는 여자 속옷광고에 열광하며 불법성인만화에 탐닉했던 그는 현대미술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처럼 에로 감성 충만한 두 사람이 만나 완성한 '내 안의 음란마귀'는 총천연색의 야시시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밤 12시가 넘으면 포르노를 틀어주었던 80년대의 다방 문화, 신속한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잡지에서 오려낸 누드사진으로 만든 보물 1호 스크랩북, 무협지 속 주인공들의 아찔한 베드신 등 암울한 현실 속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아름다운 추억. 바쁜 일상은 잠시 내려놓고 그때의 나를 찾아 ‘내 안의 음란마귀’를 꺼내보자. 아재, 개저씨, 젠틀맨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하나가 되는 시간, 어디선가 밤꽃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건 단지 기분 탓일까?

◇ 책 속으로


당시 명동은 매우 핫한 곳이었다. 특히 '코스모스 백화점'은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백화점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가면 해외스타들의 진짜 사진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그곳에는 문방구에서 볼 수 없는 실로 다양한 사진들이 많았다. 나의 서양소녀 사랑은 혜성같이 등장한 프랑스의 '소피 마르소'의 출현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영화 《라붐》으로 데뷔한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나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얼굴과 발그레한 뺨, 아늑한 눈동자, 힘없이 살짝 벌린 입술, 그리고 봉긋이 솟은 가슴은 저 멀리 아시아의 변방, 서울 변두리의 수줍은 남학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 _7쪽 <美소녀>

설렜다. <클럽>을 받은 직후부터,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던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드디어 포르노잡지를 샀다는 흥분만은 아니었다. 아세아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처음으로 이곳에서 뭔가를 했다는 기분이었다. 집과 학교라는 두 개의 공간만을 왔다 갔다 하고, 가끔씩 스크린에서 다른 공간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는 정도의 일상이었다. 영화는 언제나 잠시의 탈출이었다. 보고 나서 반추할 수는 있지만 스크린 앞을 벗어나기만 하면 언제나 익숙하고 지루한 세상이었다. 세운상가라는 특이한 공간 안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이었지만, <클럽>을 사면서 동질감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쾌감이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찰나 어른의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_14쪽 <그곳에 가면 어른이 된다>

섹스를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개인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18금의 세계』를 준비하면서 이시이 다카시와 야마모토 나오키의 만화를 처음 접하고 이후로도 계속 구해서 봤다. 다른 에로망가의 걸작들도 구해봤다. 결국 어디나 똑같다. 잘 만들면, 어떤 단계를 뛰어 넘으면 무엇이든 예술이 되고 걸작이 된다. _70쪽 <성애만화를 찾는 모험>

성을 다룬 소설은 문장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남자의 성적 욕망은 시각에 의해 상당 부분 충족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 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그런 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소설이 역시 좋다. _84쪽 <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야하다>

드디어 맹호취와 숙향낭자의 운명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황량한 벌판, 매서운 바람은 가녀린 숙향낭자의 뺨을 스치는데…. / 숙명적인 만남의 정적이 흐르고 있는 긴장된 순간, 돌연 맹호취가 기를 모아 장풍을 발사했다. / 무림고수의 갑작스런 공격에 숙향낭자의 옷마디가 풀리고, 풍만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 맹호취의 손놀림은 더욱더 빨라졌다. 보이지 않는 맹호장풍권의 공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 비단치마가 깃털처럼 날아가고 낭자의 백옥 같은 허벅지와 탐스런 둔부가 바람에 날리니…. / 으, 으음…. 주물럭, 주물럭.
_165쪽 <동네형>

김봉석, 현태준 지음/그책/176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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