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 이사장의 딸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이 걸려도 모으지 못했을 수십억원대 재산을 쉽게 벌었다는 사실만으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5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면세점 입점로비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아들 장모씨 명의로 운영하는 B사를 통해 40억여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B사는 실제로는 경영을 할 사정이 안되는 장씨가 아닌 신 이사장이 직접 운영해온 업체다.
검찰은 특히 신 이사장의 세 딸들이 2010년까지 B사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배당금이 아닌 급여 명목으로 돈을 챙긴 부분이 신 이사장의 횡령과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B사 대표 L씨로부터 "신 이사장이 직접 딸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신 이사장 본인이 직접 회삿돈을 빼돌려 딸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세 딸들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등 역할이 없는데도 사실상 '엄마 덕'으로 40억원 넘는 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신 이사장의 딸들이 어떤 용도로 돈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딸들이) 자기들 계좌로 돈을 받아 본인들이 소비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해 사업자금이나 비자금 명목이 아닌 개인 용도로 소비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건설 등기이사 등 자격으로 지난해에만 32억원 넘는 급여를 지급받았다. 롯데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이자 지분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다.
신 이사장과 세 딸은 부동산 임대회사 에스엔에스인터내셔널을 세워 네 명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55%, 세 딸들이 15%씩 갖고 있다.
신 이사장은 280억원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차녀인 장선윤 롯데호텔 상무만 해도 성북동 655㎡(198평)에 지은 단독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총수 일가가 개인적인 소비 목적으로 회삿돈을 빼돌려 딸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 이사장의 경우 그룹의 총수 일가나 총수 일가에 충성하는 이들에 대해 이사회의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고액의 급여를 지급하는 업계 관행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등기이사는 5억원 이상 급여를 받는 경우, 미등기임원은 상위 5인 이내 급여를 받을 경우(내년부터 적용) 개인별로 구체적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처럼 상장사가 많지 않고 폐쇄적인 그룹 문화를 갖고 있는 곳에서는 신 이사장이 딸들에게 '급여 잔치'를 벌이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보수를 급여 명목으로 받았다면 매우 부당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주요 그룹 임원들의 연봉은 체계적인 규정과 절차 없이 추상적인 원칙을 정한 다음에 대표이사에게 위임해 정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등기임원 여부와 상관없이 고위 임원의 경우 성과 평가와 보수 연동 규정을 이사회가 정하고 공개하고, 사회가 책임지도록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집무실에서 빼돌린 거액의 뭉칫돈을 발견하고 이 돈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 돈도 회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으로 추정하고 구체적인 출처와 조성 경위를 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