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빨리빨리'만 없었어도…목숨걸고 달렸던 18살 배달알바 ② 그게 메탄올이었다고?...안전교육도 없었던 메탄올 연쇄 실명 사고 (계속) |
12시간 밤샘 근무를 마친 A(28)씨가 동갑내기 동료인 B씨에게 말했다. 몸이 안 좋았지만 철야 근무에 쏟아지는 잠부터 해결해야 했다.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잠에서 깨어난 A씨는 눈 앞의 사물을 식별할 수 없었다. 급기야 의식마저 흐려졌다. 놀란 가족들이 A씨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그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일주일 뒤, 이번에는 A씨의 동료 B씨가 응급실로 실려 갔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같은 증세였다. 올해 1월 인천과 부천 일대 공단에서 잇따라 4명의 실명 위기 환자가 발생한 연쇄 메탄올 중독 산업재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들은 공장에서 CNC(컴퓨터수치제어)를 이용해 알루미늄으로 된 스마트폰 몸체를 깎은 뒤, 냉각제로 쓰인 메탄올을 에어건으로 불어내는 작업을 맡았다. 이때 메탄올은 CNC의 윤활제 겸 냉각제로 사용됐다.
원래는 에탄올을 써야 하지만,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절반 가격도 안 되는 메탄올을 가져다 쓴 것으로 드러났다. 메탄올은 흡입과 섭취, 피부접촉을 통해 신체에 흡수되며, 장기간 또는 반복 노출되면 중추신경계와 시신경에 손상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이다.
◇ MSDS도 무시...안전장구는 목장갑 뿐
안전보건공단의 메탄올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따르면, 메탄올을 취급할 때는 국소배기장치 등으로 환기를 해야 하며, 눈 보호를 위해 보안경을 착용하고, 작업장 가까운 곳에 샤워식 비상세척설비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 내화학성 장갑을 착용하고, 사용빈도가 높거나 노출이 심한 경우는 호흡용 보호구도 필요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작업장은 난방을 위해 환기는 커녕 창문도 열지 않아 메탄올 증기가 가득했다. A씨와 B씨가 다니던 공장의 대기 중 메탄올 수치는 1103~2220ppm으로 노출기준치의 10배가 넘었다. 게다가 이들에게 지급된 보호 장구라고는 목장갑 한 켤레 뿐이었다.
만약 A씨가 메탄올 중독에 대해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기계 옆에 주의사항이라도 적혀있었다면 메탄올 중독 초기 증세인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시력 약화를 참아가면서 일했을까. 또 사업주가 메탄올의 독성을 제대로 알았다면 창문까지 닫아놓고 작업을 하도록 했을까.
◇ “몰라도 그냥 일 하다가”...산재사망 10명 중 1명꼴 교육 못 받아 사망
안전교육은 일터에서 재해를 당하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안전교육은 무시되기 일쑤다. 지난달 발생한 고려아연 황산 누출사고 때도 노조 측에 따르면 안전교육은 전날에 8명이 받았지만 현장에는 20명 이상이 투입됐다. 투입된 인력들은 황산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안전지식 부족이나 교육 불충분 등 교육적 원인으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전체 재해사망자의 9% 수준이다. 산재 사망자 10명 중 1명이 안전교육 부실로 사망하는 셈이다.
앞서 메탄올 산재가 발생한 공장은 가동이 중지됐고, 사업주 가운데 한 명은 산재가 발생하자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안전교육을 외면해 발생하는 손실과 비용은 너무나 크다. 무엇보다 교육이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청년들이 주로 희생된다.
안전보건공단은 영세 사업주를 대상으로 산재예방교육을 받으면 산재보험료까지 할인해주는 '산재예방요율제도'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말까지 5만8천명의 사업주가 교육을 받았고, 현재도 교육이 진행 중이다.
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2년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우리나라의 50인 미만 사업장은 376만개에 달하고,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작업현장에 투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