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에서 배운 학문을 심화시키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생 상당수가 학업에 전념하기는커녕 각종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교수 지시로 연구 조작 등 불법적인 일을 하다 범법자로 전락하는가 하면, 논문 대필 기계로 취급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일그러진 상아탑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실험 결과 조작…"잔말 말고 해"
지난 2004년 수도권에 있는 S대학교 약학대학원에 진학한 최모(35) 씨는 당시 명망 있던 지모(60) 교수 사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 씨가 2년 동안 연구실에서 했던 일은 다름 아닌 데이터 조작 범죄였다.
새내기였던 최 씨가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복제약)이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했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은 작동 기술만 익히는 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절차가 복잡했다.
기계가 도출한 결과는 모두 지 교수가 해석했기 때문에 최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지시대로 원하는 내용이 나올 때까지 결과를 계속 조작해야했다.
한번은 최 씨의 선배가 교수에게 불만을 나타내자 돌아온 답변은 "잔말 말고 해, 이게 다 너희들 등록금이야"가 전부.
최 씨는 "지 교수는 제약계의 절대 권력과도 같았다"면서 "학위 수여는 물론, 취업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수의 지시는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 교수는 지난 2008년 데이터 조작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최 씨는 동기 연구원 3명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고나서야 자신들이 했던 데이터 분석이 조작이고 범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급여도 가압류돼 월 150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최 씨는 "아내와 자식 둘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생계가 막막한 것도 문제지만, 회사에서 자신을 범법자로 바라보는 것 같아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교수로부터 지시받고 시험할 때마다 변호사한테 공증을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 씨는 지 교수와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다. 그와 다른 연구원들은 현재 학교를 상대로 힘겨운 법적 다툼을 진행하고 있다.
◇ "교수 시켜줄게"…버젓이 논문대필
공부를 하면서 시간제로 강의를 하게 되자 논문 대필 제의가 들어왔다.
박 씨는 "남편이 지도교수의 지시로 대학원생과 다른 강사의 논문을 써 줬다"면서 "교수가 될 것이라는 평소 조 교수의 말을 굳게 믿고 무조건 따랐다"고 했다.
서 씨는 남의 논문을 쓸 땐 하루 2~3시간 자는 것은 기본이었고, 40세가 넘어서는 스트레스로 이가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서 씨가 10년 동안 대필한 논문은 54편.
하지만 교수 임용에 거듭 실패한 서 씨는 가족 앞으로 유서 석 장만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현재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아내 박 씨는 논문 대필의 '강제성' 여부를 놓고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 교수는 최근 CBS노컷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항상 제자 서 씨와 함께 상의하면서 논문을 썼다"며 "서 씨에게 논문 대필을 지시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구원들이 지도교수 밑에서 범법자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건 교수의 말 한마디가 거스를 수 없는 '성역'과 같아서다.
대학원 연구원들은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지도교수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학위를 취득해야하는 대학원생은 교수의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라도 대학원생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고 교육부에서는 신고센터를 운영해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지도교수 변경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단, 이것이 배신이나 변절로 낙인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