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섯? 아빠가 셋?…드라마가 그리는 가족의 확장

재혼·입양 내세운 이야기로 전통적 가족상 변화 보여줘

'또 오해영' '닥터스' '아이가 다섯'….

최근 화제를 모은 이들 드라마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가족의 확장이다. 이혼과 재혼, 입양 등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상이 드라마에서 적극적으로 그려진다.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알고 보니 남의 자식이었다'는 자극적 '출생의 비밀' 코드가 드라마를 점령하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한 가족상이 드라마에 새로운 동력으로 기능하며 '출생의 비밀'에 신물이 난 시청자의 속도 달래고 공감도 이끌고 있다.

◇ 이제는 이혼·재혼을 이야기할 때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KBS 2TV 주말극 '아이가 다섯'은 젊은 아빠, 엄마의 재혼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공감과 재미를 동시에 잡고 있다.

사별한 아이 둘의 아빠와 이혼한 아이 셋의 엄마가 재혼하는 과정은 드라마가 아니어도 충분히 파란만장할 것이다. '아이가 다섯'은 여기에 극적 장치를 추가하고 낭만과 코미디도 얹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혼이 이제는 더이상 '신기'한 일이 아닌 현실에서 '아이가 다섯'은 이혼을 넘어, 재혼 이야기를 남녀노소가 보는 오후 8시 주말극장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방송에 앞서 '아이가 다섯'의 정현정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 콘셉트는 몇 년 전에 써 놓은 것인데 그때는 지금만큼 이혼과 재혼이 시의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재혼가정이 특별하게 보였다"고 돌아봤다.

정 작가는 "그런데 몇 년 사이 이혼과 재혼이 많아졌다. 요즘은 세 집 건너 한집마다 재혼하거나 이혼 위기라고 하니, 이제는 더이상 특별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이러한 소재로 주말극을 풀어나가기 적당한 시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SBS TV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노년의 재혼이 등장한다. 교통사고로 신혼의 아들을 잃고 곧이어 아내마저 떠나보낸 60대 민호(노주현 분)와 외동아들을 홀로 키워낸 40대의 수미(김정난)가 최근 제2의 신혼을 맞았다.

'아이가 다섯'의 상태(안재욱)와 미정(소유진)에게는 재혼 과정에서 올망졸망 어린 자녀 5명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면, '그래, 그런거야'의 민호와 수미는 20살을 뛰어넘는 나이 차, 수미의 입성으로 민호네 가족의 서열에 일어난 혼란이 장애로 부상했다.

MBC TV 주말극 '가화만사성'에서는 아들 하나를 둔 이혼남 지건(이상우)과 아들을 사고로 잃은 이혼녀 해령(김소연)의 제2의 사랑이 주요하게 그려진다. 지건은 해령과의 만남에서 10대 아들의 허락을 구하고자 노력했다.

드라마가 현실보다 늘 한두 박자 뒤처지는 상황에서 방송 3사 주말극이 모두 이혼과 재혼을 그린다는 것은 100세 시대, 결혼과 가족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아이가 다섯'의 KBS 배경수 CP는 3일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극성이 강한 작법이 아닌, 현실에 있을 만한 이야기를 유쾌하고 밝게 그리며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이 드라마는 최근 4회 연장을 결정했다.


배 CP는 "처음에 기획했을 때 재혼하는 과정도 중요한데, 재혼하고 나서 과연 행복한 가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가 훨씬 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그런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재혼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서 해보고 싶은 제작진의 의도를 반영해 연장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 피 한방울 안 섞인 형제와 가족

4회 만에 시청률 15%를 넘어선 SBS TV 월화극 '닥터스'의 주인공 홍지홍(김래원)은 입양아다.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로 잃은 후 고아로 살다가 중학교 때 지금의 양부모를 만나 입양됐다.

이러한 설정은 홍지홍이라는 인물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사려 깊은 홍지홍의 캐릭터가 형성된 과정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친부모와 다를 바 없는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난 홍지홍의 모습은 입양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어뜨린다.

tvN '또 오해영'의 주인공 박도경(에릭)은 같은 부모를 둔 누나 수경(예지원),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 훈(허정민)과 함께 산다. 수경-도경 남매가 어린 시절 아빠가 사고로 죽은 뒤 엄마가 재혼하면서 얻은 동생이 훈이다.

엄마가 훈의 아빠와 바로 이혼을 하면서 훈은 일찌감치 다시 남남이 됐지만, 세 남매는 오히려 각자의 부모를 배제한 채 어른이 돼서 함께 살아간다.

도경의 엄마는 이후 세 번째 결혼까지 시도해 도경에게 하마터면 아빠가 셋이 될 뻔했다. 그러나 도경 엄마의 남성편력은 양념 역할을 했을 뿐이고, 드라마는 도경-수경 남매가 피 안 섞인 동생 훈과 친남매처럼 잘사는 모습을 중심에 배치해 여운을 줬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정아(나문희)-석균(신구) 부부의 세 딸 중 첫째 순영이 입양아로 설정됐다.

드라마는 정아가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순영을 입양한 것으로 설정했고, 이후 딸 둘을 내리 낳으면서 입양한 딸과 친딸을 알게 모르게 차별했던 정아의 과거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순간순간 차별의 죄를 저질렀을지는 몰라도 가슴으로 낳은 딸을 누구보다 아꼈고, 시집간 순영이 가정폭력을 당한 사실을 안 뒤에는 모든 것을 걸고 순영을 보호하고 지켜냈다.

◇ "이혼과 재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 성찰 필요"

아이들도 보는 주말극에서 재혼을 정면으로 다루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혼과 재혼 문제에 대한 성찰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민우회 이윤소 활동가는 "재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고정관념을 없애는 효과는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과연 이혼이나 재혼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냐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아침극이나 일일극 등 대다수의 드라마에서는 외도한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린 후의 단계로 재혼이 그려지고 있고, 이혼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나 재혼을 통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는 것이다.

이윤소 활동가는 "이혼도 재혼도 굉장히 큰 결정인데 드라마에서는 불행하거나 행복한 두 가지 모습밖에 없고, 또 대부분은 이혼의 해피엔딩은 재혼이라는 논리를 은연중에 펼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부모 가정이나 이혼하고 혼자 사는 가정을 얼마나 잘 그려내고 있는가 의문이고,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입양 역시 그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설정에 머물지 않나 싶다"고 진단했다.

이혼과 재혼을 넘어 다양한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드라마에 많이 반영돼야 한다는 바람도 이어진다.

이윤소 활동가는 "다양한 방식의 동거,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도 드라마에서 같이 담아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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