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문화재는 모두 조선시대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관련이 있는 옛집이다.
동춘당 고택은 송준길의 5대조인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몇 차례 이전했으며, 1835년 중건한 뒤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집으로, 6칸 규모의 대청 양쪽에 날개채가 붙어 있으며, 사랑채는 규모가 큰 일자집으로 사랑방과 마루방이 있다.
동춘당 고택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할 수 있고, 상량문 기록을 통해 가옥의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는 송준길의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분가하면서 건립했고, 송병하의 아들인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그의 부인인 호연재 김씨(1681∼1722)가 살던 고택이다.
충청지역 살림집 중에는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안채는 마루방과 툇마루가 사방에 배치돼 있다.
큰집 격인 동춘당 고택과 같이 송준길 가문으로서 호서지역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있다.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요소를 알 수 있는 희소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