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참사 이후 배운 서각(새김판) 70 여점 전시
- 7/5 ~ 7/17 서울 통의동 '류가헌'
- 제주 강정마을 투쟁은 현재진행형
- 해군, 34억 5000만원 구상금 청구, 가혹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6월 30일 (목)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문정현 신부
◆ 문정현> 고맙습니다.
◇ 정관용> 서각을 하셨어요?
◆ 문정현> 원래 서각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2003년 대추리에서 2년 반을 살았습니다.
◇ 정관용> 대추리?
◆ 문정현> 대추리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인데 그게 미군기지로 확장이 되면서 280만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대추리 주민들의 땅, 논, 집까지 다.
◇ 정관용> 강제수용된 거죠.
◆ 문정현> 강제수용이 되고 집단이주를 하는데 그때 이제 강제수용 저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 온갖 재주꾼이 다 모였는데 그중에 서각을 하는 분들이 눈에 보였었습니다. 그때는 그걸 배울 생각도 없었고 어깨 너머로 '참 부럽다'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냥 제 발로 기어 나올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완전히 공터가 돼 버리니까.
◇ 정관용> 패배했죠. 그래서 강제수용됐고.
◆ 문정현> 견디지 못하던 터에 용산참사, 쌍용자동차가 또 터지지 않았습니까? 용산 남일당이라는 건물 옆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거기도 처절하게 당했죠. 도와주는 대책위원들, 유족들 그리고 철거를 당한 사람들. 전철연 사람들이 엄청난 탄압을 받고 결국은 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는데.
◇ 정관용> 그때 총리가 와서 사과하고.
◆ 문정현> 사과는 무슨 사과에요.
◇ 정관용> 어쨌든 그런 걸 거쳐서.
◆ 문정현> 거쳐서 이제.
◇ 정관용> 몇 년 만에 장례식을 했었죠.
◆ 문정현> 그렇죠. 그래서 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 정관용> 장례 끝나고?
◆ 문정현> 그렇죠. 대추리의 그 아픔, 또 이 용산에서의 아픔. 이것이 올라오면서 제 마음이 공황 상태가 왔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쪽으로 쉬러 간 것이 이 서각을 전문으로 하는 분을 조항우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민박집에서 4박 5일을 거처하면서 배웠습니다. 음각, 양각. 그래서 그걸 가지고서.
◇ 정관용> 이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왜 드셨던 거에요. 그러니까?
◆ 문정현> 그냥 제 자신을 이기려고 했던 것이죠.
◇ 정관용> 너무 마음이 공허해서?
◆ 문정현> 너무 마음이 그러니까.
◇ 정관용> 뭔가를 해야 되겠고.
◆ 문정현> 뭔가를 해야 되겠고. 그런데 써 보지도 않은 붓글씨를 써서 판에 붙여서 날카로운 칼로 파고. 망치 때려서 파고 그 글귀를 생각하고 또 그 금을 따라가야 하니까. 세밀하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문정현> 그러니까 마음 다스림이 돼요. 특히 제가 선택한 이 글귀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길을 트게 됐고. 그다음에는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 저항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전국에 있는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단식농성을 하는데 이 신부님들에 대한 태도. 이런 것들이 심지어는 ‘여기에서 미사하지 마라. 미사를 하려면 로만칼라를 벗고 하라’ 이런 치욕적인 말까지 들어서. 어쨌든 단식을 마지막 미사로 마쳤는데. 그것도 역시 참을 수가 없어서 명동성당에 들어와서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 반, 6시까지 견뎠는데 오전에는 성당 안에서 기도만 했습니다.
◇ 정관용> 기도만.
◆ 문정현> 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잠시 잠깐 쉬었다가 2시부터는 서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거기 앉아서.
◆ 문정현> 매일 서각을 한 것이 아마 120여점. 이제 명동성당 기도생활 말기에 강정 주민들 또 활동가들이 계속 올라와서 강정에 와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 명동성당의 기도를 접고 집에서 내려와서 강정에 들어갔습니다. 참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처절해서. 그래서 하룻밤 자고 들어왔다가 저랑 같이 활동하는 평화바람 식구들 논의해서 다시 강정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해서 논의한 끝에 강정에 들어가서 정착하자 해서 그야말로 2011년도 7월 아주 초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 정관용> 강정 얘기는 제가 좀 이따 여쭤보겠고.
◆ 문정현> 그래서 서각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럼 그 강정 현지에서도 서각도 하시고.
◆ 문정현> 네.
◇ 정관용> 이제 어느 정도 일반에 전시도 하시고 돈 받고 팔 정도 수준이 되셨다라고 자임하세요?
◆ 문정현>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어떤 상품이라는 건 생각도 안 했고 또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전문적으로 배운 일도 없고 오직 시간 죽이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 정관용> 마음 다스리기 위해서.
◆ 문정현> 단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나에게 꽂히는 글귀들을 모아서 붓글씨로 쓰고 그걸 판에 붙여서 계속해서 파서 완성이 되면 그걸로 족했습니다. 그래서 제 방 앞에 있는 복도에다 쭉 늘어놓은 것이 한 5년 동안 긴 시간이지 않습니까? 한 140, 150점이 되더라고요.
◇ 정관용> 남들이 보고 '이거 뛰어나다' 그래요?
◆ 문정현> 달라고도 합니다. (웃음) 그러니까 그 작품성보다는 그 글귀에 마음이 닿는 게 있어요.
◇ 정관용> 어떤 글귀들을?
◆ 문정현> 저는 주로 성서의 말씀을 한다든가 유명한 시인들이 강정이라든가 내가 있던 현장과 딱 부합되는 그런 말씀을. 마음에 탁 닿죠. 그걸.
◇ 정관용> 지금 예를 들어서 기억나시는 글귀 한두 개만 좀.
◆ 문정현> 강정에 있으니까 군사기지 아닙니까? 우리 교회의 가르침들이 있죠. 성서의 말씀도 있죠. 그 중에 하나는 '무기를 손에 들고 사랑할 수 없다'.
◇ 정관용> 아. 무기를 들고 사랑할 수 없다. 이런 글귀를 쓰고 서각을.
◆ 문정현> 여러 번 쓰는 거죠. 글씨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고 이 정도 글 쓰고. 또 하나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 정관용> 그건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
◆ 문정현> 이건 성서에 있는 말씀이죠. 그다음에 평화에 관한 주제들이 많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나오고 미카서에도 나오고. 그런 글귀가 마음에 딱 닿으면 이건 안 파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마음에 닿죠. 그러면 밤새 열심히 써서 배길 판을 구하고 그 판에 맞춰서 글자 크기도. 판이 작으면 글자를 작게.
◇ 정관용> 그렇겠죠.
◆ 문정현> 어떤 건 거의 2m 되는.
◇ 정관용> 대작품도 있고?
◆ 문정현> 대작품도 있고 그렇습니다.
◇ 정관용> 어떤 사회적 의미까지도 유추해서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글귀들을 주로.
◆ 문정현> 그렇습니다.
◇ 정관용> 이번에 전시회는 백기완 선생님의 글씨와 함께. 어떻게 이렇게 또 시작된 겁니까?
◆ 문정현> 사실은 이런 것을 어디다 쓸 생각을 못 했는데 이런 '꿀잠'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경을 해서 투쟁을 하는데 거처도 없지 않습니까? 항상 길바닥에서 자야 되고 지하철어서 자야 되고 어디 씻을 데도 없고. 그런 판에 아, 이 노동자의 집을 마련해야겠다. 참 눈물겹습니다.
◇ 정관용> 상경 투쟁하러 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거처 공간?
◆ 문정현> 우선 단순한 생각은 그거였습니다.
◇ 정관용> 꿀잠이라도 자게 해 주자.
◆ 문정현>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런 조직을 했던 활동가들이 저한테 찾아왔는데 사실 제가 사제생활 50년을 했습니다. 그래서 서품 50주년 혹은 금경축이라고 합니다. 이 금경축을 위해서 우리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그 행사를, 축하식을 해 주는데 거기에 초청을 받고 군산에 내려온 터에 이분들이 저에게 급습을 해서 이런 어영부영하다가 그 얘기를 꺼냈습니다. 서각 작품을 내달라고. 그래서 '난 내놓을 수 없다. 작품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내 마음 다스리고 시간 죽이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어디다 내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절대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건 어떻게든지 알아서 할 터이니 그 작품만 주십시오'. 그거 참 내놓을 수 없다 하는데 그 끝에 백기완 선생님도 붓글씨를 써본 일이 없으시다고 우리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그러나 뜻이 뜻인 만큼 해서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두문불출 붓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희가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에 '그래, 그러면 백기완 선생님 그 긴 동안 고난을 겪으신 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치신 분. 그분의 생각이 글로 표현이 됐다면 나 몇 점 보내다오. 나, 그 백기완 선생님의 글을 내가 이 서각으로 파겠다'. 그것을, 백기완 선생님한테 야단맞습니다. 새김판이라고 해야 된답니다.
◇ 정관용> 아, 서각이 아니라.
◆ 문정현> 서각이 아니라 새김판으로.
◇ 정관용> 맞아요. 항상 순 우리말 써야 된다고 하시니까.
◆ 문정현> 새김판을 내가 만들겠다 해서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백기완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내가 다 내놓겠다. 이렇게 강정에서 만든 모든 작품 다 가져가라. 아마 140여점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와서 70점을 실어간 겁니다.
◇ 정관용> 그리고 실제로 백기완 선생님의 붓글씨를 받아서 서각을 하신 작품도 있죠?
◆ 문정현> 세 개는 완전히 해서 이번에 가져왔습니다.
◇ 정관용> 세 작품.
◆ 문정현> 다 하고 싶지만 시간 여유도 없고 그 중에 하나는 '천년을 실패한 도둑', '산자여 따르라' 이런.
◇ 정관용> '천년을 실패한 도둑'.
◆ 문정현> 그 의미가 심장합니다. 저는 제 뜻대로 남의 시를 읽고 명상을 했듯이 그 글귀를 파면서 생각했지만 난 엉뚱하게 생각했더라고요.
◇ 정관용> 무슨 뜻입니까? 천년을 실패한 도둑?
◆ 문정현> 사람이 그게 참 으레 문자로 DNA가 있는가 봅니다. 사람이라는 건 모든 걸 자기 것을 만들고 싶고 욕심이 나면 뺏고 싶고 차지하고 싶고 그러면 안 되지. 그 심보는 도둑놈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도둑질을 실제로 하지 못한 건 실패한 겁니다. 그러니까 남을 해치고 싶고 그래서 나에게 어떤 득이 되게 하고 하는 그 도둑놈의 심보는 있었지만 그것을 단념하고 하지 못하는 그 도둑질에 실패하는 그런 사람들.
◇ 정관용> 그런 산자여 따르라.
◆ 문정현> 네.
◇ 정관용> 알겠습니다.
◆ 문정현> 그 글귀는 판은 다르지만 산자여 따르라는 또 이제….
◇ 정관용> 누구나 그 탐심, 욕심이 있으나 그것을 계속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
◆ 문정현> 그런 사람이 되어라.
◇ 정관용> 천년을 실패한 도둑이 되어라?
◆ 문정현> 참 의미가 있고 또 재미도 있고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가 애써 만든 것들이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 오고 갈 데 없는 이 사람들의 집 마련을 위해서 쓴다니 저는 더 이상 보람될 수가 없습니다.
◇ 정관용> 백기완 선생 글씨는 어때요? 괜찮던가요?
◆ 문정현>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 정관용> 조금 아까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여쭤보는 거에요.
◆ 문정현> 열 번 쓰면 열 번 다 어떤 게 내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그러나 계속 쓰게 되면 자기 글체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거 완전히 자기 글체입니다.
◇ 정관용> 백기완 류의.
◆ 문정현> 그렇죠. 백기완 선생님의 글은 참 특이합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런데 그 분의 글을 이 서판에 파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먹을 잔뜩 묻혀서 일필휘지로.
◇ 정관용> 힘이 들어가 있는, 기상이 있는.
◆ 문정현> 그렇죠, 그 깊이 들어간 무언….
◇ 정관용> 알겠습니다.
◆ 문정현> 이런 것까지 표현하자면 참 힘들었습니다.
◇ 정관용> 붓글씨 36점 그리고 서각.
◆ 문정현> 40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40점, 새김판 77점. 7월 5일부터 7월 17일까지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 문정현> 류가헌에서.
◇ 정관용> 두 어른 전.
◆ 문정현> 두 어른 전.
◇ 정관용> 두 어른 전 이야기는 이 정도 하고요. 강정마을에 계시잖아요. 그런데 지금 해군기지는 완공이 됐죠.
◆ 문정현> (웃음)
◇ 정관용> 그래서 그 군함들도 들어와 있나요?
◆ 문정현> 해군기동연대 전대, 또 잠수함대. 그러니까 창설이 됐죠.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다 갖춰졌고.
◇ 정관용> 가동되고 있고.
◆ 문정현> 그래서 이제 군인들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근무를 하고 있고 또 실제로 총,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트럭에 실려서 마을 안에까지 와서 군사훈련을 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강정마을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 정관용> 그 얼마 전 뉴스가 지금 또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 일명 중덕삼거리라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하시던 분들이 모이는 공간 아닙니까. 거기 망루도 세워져 있고 그렇죠? '그 건물도 빨리 철거해라' 계속 그러고 있다면서요.
◆ 문정현> 2012년 9월 2일날 행정대집행으로 이른바 구럼비. 그 주민들의 신성시하고 참 귀하게 여기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그런 희귀한 바위를 빼앗기고 또 농토를 빼앗기고 그게 완전히 벽을 쳐서 금지구역으로 되고 그래서 쫓겨날 대로 쫓겨난 것이 바로 삼거리….
◇ 정관용> 중덕삼거리.
◆ 문정현> 중덕삼거리라고 하는 데고. 거기다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거기에 식당을 짓고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시는 손님들 세 끼 밥을 제공했고 또 주민들도 활동하는 과정에 함께 하고 하는. 그야말로 저희로써는 그러니까 12년 이후 지금까지 참 중요한 공간으로 세웠고 그리고 강정에 참 숙소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해군기지 공사를 통해서 모든 인부들이 들어와서 집집마다 다 전세로 들어오고 세로 들어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 정관용> 아, 그 공사현장에 일하시는 분들이 숙소로.
◆ 문정현> 일하시는 분들까지도. 그래서 참 누구에게나 숙소를 구한다는 건 힘든 일인데 그래서 그 빈 공간에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해비타트라는 이름으로 거기에 화장실도 있고 보일러실도 있고.
◇ 정관용> 신부님도 그러면 거기 계신 거에요?
◆ 문정현> 저도 한동안 거기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작년도에 사실 민주화운동 그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형사보상금으로 1억 5000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돈을 받자마자 땅이 생겨서 땅을 사서 천주교제주교구에 그것을 헌납했습니다. 그래서 그 땅 위에다가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건립했습니다.
◇ 정관용> 아하.
◆ 문정현> 4층 건물입니다.
◇ 정관용> 거기에 기거하고 계시고.
◆ 문정현> 거기에 땅까지 제공한 사람이니까 생활공간은 마련해줬죠.
◇ 정관용> 그런데 좌우간 아까 말씀하신 한동안 계셨던 컨테이너 이런 것까지 지금 다 철거해라 이건가요?
◆ 문정현> 그렇죠. 그리고 우리가 저항의 상징으로 8m 철탑을 세운 것이 있습니다. 망루를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식당, 생활공간 컨테이너, 망루를 이제 철거하겠다고.
◇ 정관용> 강정의 아픔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군요, 그런 의미에서.
◆ 문정현> 저는 그런 경우의 경험이 참 많습니다. 저 매향리라는 데, 대추리라는 데, 용산. 그런데 요즘 국책사업이라는 걸 놓고 볼 때 우리나라는 민주국가 아닙니다. 그리고 재산권을 인정하는 나라 아닙니다. 국책이라 하면 어떤 중앙토지관리위원회를 통해서 거기에서 결정이 되면 법원에 공탁을 걸고 그래서 무조건 땅을 뺏어가는.
◇ 정관용> 강제수용.
◆ 문정현> 강제수용을 하는 그런 절차에 개인 재산은 없다고 봅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억울하게 다 저항할 수 없는. 이런 과정을 다 지급하는데 이 강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 정관용> 강정마을 주민들한테 해군 측에서 34억 5000만원 구상금까지 청구했잖아요.
◆ 문정현> 그것도 저로서는 참 처음 보는 횡포입니다. 어디 노동자계층에서 그 공장에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구상권을 청구해서.
◇ 정관용> 그건 비일비재했고요.
◆ 문정현> 비일비재했지만 이런 국책사업을 통해서 이 공사 지연으로 손해 본 것을 물어내라 한 것은 나는 기상천외한 일이고 이건 가혹한 일입니다. 아무리 국책사업이라고 하더라도 반대할 수 있는 거고 저항할 수 있는 거고 그 저항해서 무엇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걸 주민들에게까지 덤터기를 씌워서 34억. 마을 다 팔아도 34억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돈을 강제로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이건 그런 낼 돈도 없고요. 그냥 저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정관용> 네. 계속되는 아픔. 그 말씀까지 오늘 듣겠습니다. 일단 오늘 모신 건 두 어른 전 전시회 때문이니까 전시회 우선 잘되기를 바라고요.
◆ 문정현> 고맙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널리 알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 정관용> 문정현 신부님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문정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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