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닮아 '제2의 밀양사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 수사관의 노력으로 결국 5년 만에 가해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됐다.
◇ 내사중지로 결론 난 사건, 끈질긴 사명감으로 결국
28일 경찰과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8월 서울 도봉경찰서에 근무하던 김장수 경위는 고등학생들의 집단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 놀랄 만한 소식을 접했다.
조사를 받던 피의자 한 명이 별안간 "본인을 제외하고 다른 피의자인 정모(당시 16세) 씨 등 3명은 1년 전 또다른 피해자인 여중생들에게도 집단 성폭행을 한 전력이 있다"고 전한 것.
김 경위는 피해자인 여중생들을 찾아냈지만, 이들이 입을 열지 않아 당시 사건은 내사중지로 결론 났다.
이후 김 경위는 정기인사로 다른 경찰서로 전출을 갔음에도 이 사건을 잊지 않았고, 올해 초 이 사건은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싶다며 도봉서로 돌아왔다.
형사 출신이지만, 이 사건을 맡을 수 있는 여성·청소년 전담수사팀에 자원해 그는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는 지난 2월 결국 피해자 A 양의 입을 열 수 있었다. 3년 동안 피해 학생들과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말문을 틀 수 있도록 기다린 덕이었다.
◇ 밀양사건과 판박이? 이번엔 달랐다
경찰 조사결과, 정 씨와 동갑내기 동네 친구 22명은 지난 2011년 9월 A 양과 친구 B 양을 서울 초안산 기슭으로 끌고 가 술을 먹여 혼절시킨 뒤,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
22명중 특수강간 혐의가 확인돼 구속되거나 영장 신청 예정, 혹은 군 당국에 이첩 예정인 건 정 씨 등 6명. 나머지는 강간미수 또는 방조 혐의를 받고 불구속 수사중이다.
정 씨는 일주일 전 같은 장소로 이 여중생들을 불러 같은 방법으로 정신을 잃게 해 4명이서 집단 성폭행하기도 했다. 친구 11명은 옆에 있었다.
앞서 도봉구의 한 골목에서 몰래 술을 마시던 A 양과 B 양을 정 씨가 발견하고 "술을 마신 것을 다 봤으니 학교에 일러 잘리게 하겠다"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협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피해자 C 양을 성폭행 한 뒤 협박해 동생과 사촌언니까지 폭행한 밀양 성폭행 사건과는, △수십명의 피의자가 △중학생 피해자를 협박·유인해 △고립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범행했다는 점 등이 닮아있었다.
피의자 부모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외려 피해자 탓을 하는 점까지 일치했다.
취재진이 만난 이번 '초안산 사건'의 일부 피의자 부모는 "얘네가 성폭행을 했다는 증거가 있냐"거나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나서는 건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오히려 '피해자'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피해자에게 폭언을 퍼붓고 '봐주기 수사' 논란을 일게 했던 '밀양 사건'과는 달리 이번 '초안산 사건'은 한 수사관의 끈질긴 사명감 덕에 범행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