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195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교 석사와 1966년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구장로회신학교(현 영남신학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 교목 겸 신과대학 조교수를 거쳐 서울노회 연동교회에서 시무하는 등 1956년부터 1989년 만 60세로 조기 은퇴하기까지 34년간 신학교와 교회, 목회사역을 감당했다.
경건하고 엄격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일평생 분단과 독재의 현실에 맞서 평화와 통일의 신학을 펼치며 신학자와 기독교교육학자, 그리고 목회자로 살았다.
한국교회와 연합운동, 교단 발전을 위해서도 큰 역할을 감당했다.
고인은 제72회 총회장으로 총회(1987년)를 섬겼고 총회 서기와 총회 총무, 서울노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숭실대학교 이사, 정신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82년에는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안 국민훈장 석류장(사회분야)를 수상했다.
고인의 장례는 4일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예배는 오는 30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예장 통합 총회장으로 진행되면, 장지는 연동교회 부활의 동산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방순영 여사와 딸 혜정, 혜선 아들 홍규, 중규 등 2녀 2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