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근은 민머리에 독특한 안경, 끝을 말아 올린 콧수염으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자랑한다. '괴짜 디자이너' '가면 디자이너'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황재근의 우여곡절 많은 삶이 26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됐다.
황재근은 지난 2013년 한 디자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결국 빚더미에 앉았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옷을 만들던 디자이너가 가면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황재근은 무일푼에 사무실조차 없었지만 퀄리티 높은 가면을 만들고 싶었다. 원단 샘플 카탈로그에 붙어 있는 작은 조각을 잘라 붙여가며 가면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복면가왕 녹화가 있는 날이면 녹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방송을 준비한다.
황재근은 미대 재학 시절 미술 과외, 출판사 삽화 작업, 의류 피팅 모델 등 7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5남매 중 막내인 그는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유학자금과 등록금, 재료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졸업과 동시에 떠난 유학 길도 순탄치 않았다. 벨기에 앤드워프 왕립 예술학교에 입학했지만 비자문제로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했다. 힘들고 외로웠던 유학생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항상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였다. 양장점을 운영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이어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황재근은 졸업을 1년 앞두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때, 큰형이 조의금 봉투를 건넸다. 누나들도 유학을 무사히 마치고 패션디자이너로 돌아오라며 어머니의 비상금을 쥐여줬다.
황재근은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황재근에게는 현재 패션업계뿐 아니라 가전제품에서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홈쇼핑까지 진출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45분 만에 1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생에 첫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과거 찜질방, 만화방을 전전하고 판자촌, 옥탑방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만큼 그에게 집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최근 황재근은 가족의 숙원사업이던 부모님의 묘를 정비했다. 그렇게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 가족과 함께 성묘에 나선 황재근은 깔끔하게 정돈된 부모님의 산소에서 조카들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