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1980년대 말부터 치면 25년 이상의 역사를, 1995년에 출범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을 대다수의 한국인 피해자들이 거부하면서 일본의 법적 책임이 전면 부각된 때부터 따지더라도 20년 이상의 역사를 참담하게 짓밟은 사건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성노예'라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가혹한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은 세월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법정에서 강연장에서 정의로운 해결을 호소해왔다. 그 호소에 공감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시민들이 힘을 모아 일본 정부는 '사실 인정, 사죄,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위령, 책임자 처벌'을 통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성노예'는 보편적인 여성인권의 핵심 과제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내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거부해왔다. 처음에는 업자가 한 일이라며 발뺌하다가, 증거 자료가 공개된 1992년에 이르러 비로소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죄(おわび)와 반성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았던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종결되었다고 우기고 있다. 그나마 '국민기금을 통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기도 했던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등장 이후에는 반동의 길을 내달려왔다.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각의 결정을 강행하고,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들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2015 합의」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바로 그 아베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주었다. 일본 정부의 인정과 약속은 1993년의 고노담화, 1995년의 '국민기금'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국제사회에서의 비난·비판 자제를 보증해주었고,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역사의 시계를 사반세기 이전으로 되돌리다 못해, 아예 문제 자체를 지워버리는 데 합의해준 것에 다름 아니다.
'2015 합의'가 발표된 순간 사반세기 이상 이어져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무대 위의 모습이 홀연 바뀌었다. 무대 위에서 책임을 추궁당하던 일본 정부는 슬그머니 객석으로 내려와 '다 끝났다'며 팔짱을 낀 채 '10억 엔을 받으려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주문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를 상대해야 할 한국 정부가 돌연 무대 위로 올라가, 일본 정부의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정면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얼버무리며 전전긍긍하면서, '절대 반대', '무효화'를 주장하는 자국의 피해자와 시민들에 맞서며 전에 없던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31일,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일본군위안부 재단설립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사태를 악화일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표와 '2015 합의' 관련 자료를 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장면들을 정리하고, '2015 합의'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들을 제시한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범죄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이니 법적 책임이며, 일본의 책임이니 국가책임입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을 부정하며 10억 엔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합니다. 심지어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도발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잘못된 합의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로 하여금 법적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입니다.-7쪽
"'2015 합의'가 잘못된 길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는 일단 멈추어 서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서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 계속 가야한다고 우기는 것은 우둔한 아집일 뿐입니다. 그것이 한 나라의 정부가 하는 일이고, 게다가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면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7쪽
김창록, 양현아, 이나영, 조시현 지음/경인문화사/182쪽/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