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절벽, 그러나 아기사자는 전설을 꿈꾼다

심창민, 삼성 새 수호신으로 고군분투

'형들이 하던 세리머니였는데...' 삼성 마무리 심창민(오른쪽)이 23일 넥센과 원정에서 8회 1사에서 등판해 9회까지 4-0 승리를 지켜낸 뒤 포수 이지영과 주먹을 부딪히는 모습.(고척=삼성 라이온즈)
삼성 우완 언더핸드 심창민(23)이 완전히 사자군단의 새 수호신으로 우뚝 섰다. 우상으로만 우러러봤던 대선배들의 역할을 자신이 직접 맡게 됐다. 부담도 크지만 굳은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이겨나가고 있다.

심창민은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과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원정에서 1⅔이닝 무피안타 1볼넷 무실점 역투로 4-0 승리를 지켰다. 팀의 4연패 탈출을 이끌며 시즌 9세이브째를 따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삼성은 7회까지 4-0으로 앞서 승기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8회 필승조 안지만이 안타와 볼넷 등으로 무사 1, 2루에 몰리면서 위기가 왔다. 후속 타자 고종욱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냈으나 1사 1, 2루 득점권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모를까 삼성은 4연패 중이었다.

이에 삼성 벤치는 지체없이 마무리 심창민을 올렸다. 상대 클린업 트리오로 이어지는 타순이었다. 자칫 흐름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이날 경기 전 "요즘같은 타고투저 시대에는 3점이 아니라 4점 차도 순식간에 뒤집어질 수 있어 필승조를 올리는 기준이 4점 차"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창민은 첫 타자 김하성을 풀카운트 끝에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4번 타자 윤석민과 역시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내주며 만루에 몰렸다. 한방이면 동점까지 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심창민은 외국인 타자 대니 돈을 침착하게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고비에서 벗어난 심창민은 9회 김민성, 이택근, 장영석을 모두 범타로 깔끔하게 처리해 승리를 지켜냈다.

'창민아 고마워' 23일 넥센과 원정에 선발 등판해 6회 1사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낸 삼성 김기태(왼쪽)가 9회 4-0 승리를 지켜낸 심창민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고척=삼성_
시리즈 스윕패 위기와 팀의 연패를 동시에 구해낸 역투였다. 이날 승리로 삼성은 분위기 반전을 이뤄 주말 케이티와 홈 경기를 위해 대구로 기분좋게 내려갈 수 있었다. 이날 6회 1사까지 호투한 김기태의 시즌 2승째도 지켜줬다.

이날 경기 전 류중일 삼성 감독은 "외국인 투수들이 빠져 필승조가 누구냐 싶을 정도로 불펜이 약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 후 류 감독은 "선발 김기태를 비롯해 안지만과 심창민이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마무리? 부담이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사실 심창민은 올 시즌 팀의 마무리가 아니었다. 당초 삼성은 베테랑 안지만을 마무리로 낙점해 시즌을 치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지만이 부상으로 5월을 사실상 비우면서 비상이 걸렸다. 그 자리를 메운 게 필승 불펜 심창민이다.

심창민은 임시 소방수를 맡은 5월 10경기 등판, 1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ERA) 0.63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6월 잠시 주춤해 4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2패를 안았으나 ERA 2.38로 여전한 상승세다. 이달 초 한화전에서 두 번 연속 패전을 안았으나 이후 5경기에서 4세이브를 거뒀다.

이런 활약에 안지만이 복귀했음에도 심창민은 마무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24일 돌아온 안지만은 아직 부상 여파가 남았고, 구위가 최고조에 이르지 않았기도 하지만 심창민이 제 역할을 해주고 있어 굳이 보직 변경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사실 안지만은 오승환을 대신하다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2014시즌처럼 마무리보다는 2~3이닝을 책임질 필승조가 더 어울린다는 평가가 더 많다. 어쩌면 심창민이 마무리를 맡아주는 현재 상황이 삼성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형, 뒷문 같이 책임져요' 삼성 심창민(왼쪽)이 지난 11일 KIA전에서 세이브를 따낸 뒤 앞서 등판한 안지만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자료사진=삼성)
심창민도 팀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더욱 성숙한 책임감을 보이고 있다. 24일 경기 후 심창민은 "개인적으로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내려 노력하고 연패를 끊어서 기분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갑작스럽게 압박감이 큰 마무리를 맡게 된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역발상의 자세로 받아들인다. 심창민은 "마무리가 못 하면 팀이 지는 상황이라 신경은 쓰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곧이어 "그런 부담감보다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자리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런 부분 때문에 잘 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사실 마무리는 심창민에게는 꿈의 보직이다. 자신이 우상이던 임창용(KIA)과 룸메이트였던 선배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모두 푸른 피의 마무리였기 때문이다. 2014년 시즌 중 미국에서 복귀한 임창용과는 이미 두 시즌 한솥밥을 먹으면서 많은 부분을 배웠다.

오승환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두산과 한국시리즈 당시 아기사자였던 심창민은 같은 방을 쓰는 오승환의 직구에 대해 "공이 포수 미트로 들어오면서 삼단변신을 하는 것처럼 오히려 구속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감탄한 바 있다. 오승환의 돌직구는 심창민에게는 지향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대선배들의 역할을 이제는 자신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자리인 셈이다. 심창민은 "마무리는 불펜에서 제일 강한 투수가 하는 보직이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진 아기사자는 정글을 헤쳐나가며 역대급 선배들의 뒤를 이어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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