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부정부패 수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판결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 대법원 판결로 불거진 브로커 이동찬 '봐주기 수사' 의혹
대법원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구명 로비 의혹 사건의 핵심 브로커 이동찬(44)씨에 대해 검찰이 과거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봐주기 처분’을 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는 취지가 담긴 판결을 23일 내놨다.
금괴 밀수 조직에 가담했던 이씨로부터 4500만 원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세관 공무원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한 것이다.
뇌물을 건넨 직접 증거가 없어 이씨의 진술의 신빙성이 쟁점이 됐는데, 대법원은 금괴 밀수에 가담했던 이씨가 그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그가 금괴 밀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고, 변호사법 위반 혐의까지 더해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서 선처를 바라고 검찰에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번 사건이 공범과 금괴 밀수를 도운 공무원들을 처벌하고 자신은 선처해달라며 이씨가 검찰에 낸 진정서를 토대로 수사가 진행된 것도 대법원의 의심을 산 대목이다.
대법원은 “이씨가 밀수한 금괴의 양이 약 955㎏, 시가 약 334억 원에 이르는 규모로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고 중국으로 밀항해 태국에 체류하는 등 공소시효가 정지될 수 있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이씨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기간의 공소시효를 빼지 않은 게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이씨는 금괴 밀수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명목으로 조직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으로만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법원 "다른 재판 받던 중 궁박한 사정 벗어나려 허위 진술 가능성"
직원과 협력업체 등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민영진(58) 전 KT&G 사장에 대해서도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비슷한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민 전 사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자백한 이들이 다른 수사나 재판에서 검찰의 선처를 받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이 보면서다.
이들의 진술이 오락가락했다고도 법원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이미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민 전 사장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추가로 받게 되자 궁박한 사정을 벗어나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사실상 ‘별건 수사’를 하면서 증인들을 ‘압박’했을 가능성에 대해 의심한 것으로 보인다.
◇ 검찰 "부정부패 수사 불가능할 수 있어" 반발
검찰은 민 전 사장 판결과 관련해 “우리나라 부정부패 수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즉각 항소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금품을 줬다는 진술이 법정에서도 유지됐는데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실상 부정부패 수사가 불가능해진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어떻게 남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이를테면 종교적, 양심적인 순수한 동기로만 진술하는 경우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느냐”고도 반문했다.
단순히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진술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 이씨가 연루된 사건 판결에 대해 “오히려 선처를 바라고 진술했다면 더욱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느냐”며 “법원과 검찰의 입장이 도돌이표를 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