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신아람 사태?' 리우에서 재현될 가능성 높다

'런던 오심 사태, 리우도 조심해야 한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4강전에서 1초 오심에 의해 결승행이 좌절된 신아람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왼쪽)과 펜싱 국가대표팀의 훈련 모습.(자료사진=중계화면 캡처, 노컷뉴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으로 우뚝 선 한국 펜싱.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거머쥐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하지만 아픔도 있었다. 여자 에페의 신아람(계룡시청)이 4강전에서 안타까운 '1초 오심'으로 결승행이 무산됐다. 종료 1초를 남기고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의 공격을 세 번이나 막아냈지만 시간이 흐르지 않아 끝내 네 번째 공격에서 실점했다.

신아람은 피스트에 주저않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심재성 여자 에페 코치도 거세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 후유증으로 신아람은 3, 4위 결정전에서도 허무하게 무너져 메달이 무산됐다.

오는 8월 개막하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최근 급성장한 한국 펜싱인 만큼 메달이 걸린 중요한 순간 불리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희생양이 됐던 신아람조차 "오심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펜싱연맹 회장국 러시아, 요주의 대상"

최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심 코치는 "리우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세계 펜싱의 흐름상 국제펜싱연맹(FIE) 회장국인 러시아가 요주의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심 코치는 런던 대회 신아람 사태 때 주심의 제지에도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는 등 유창한 프랑스어로 당당하게 항의해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직접 겪은 만큼 누구보다 애매한 판정에 대한 상황을 잘 아는 지도자기도 하다. 그래서 걱정도 더 많다.

심 코치는 "현재 FIE 회장(알리셔 우스마노프)은 야심이 대단하다"면서 "런던 대회 때 러시아가 부진했기 때문에 리우올림픽을 앞두고는 절치부심 금메달을 배출하려는 의지가 엄청나다"고 귀띔했다. 막강한 재력의 회장을 배경으로 러시아가 최근 국제대회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은 것은 세계 펜싱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오심, 문제 없습니다'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 구본길이 22일 미디어데이에서 리우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태릉=노컷뉴스)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은 러시아의 주력 종목이 한국 펜싱의 유력한 금메달 종목이라는 점이다. 펜싱 대표팀은 이번 대회 메달 후보로 남자 사브르를 꼽고 있다. 세계 랭킹 2위 김정환, 4위 구본길(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개인전에서 일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은 4년 전 런던에서 단체전 금메달 신화를 합작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 랭킹 1위는 알렉세이 야키멘코로 러시아 국적이다. 6위도 러시아의 니콜라이 코바레프다. 실력상 김정환, 구본길과 금빛 길목에서 숙명적으로 만날 확률이 높다. 이들이 심판 판정을 등에 업는다면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볼 것은 자명하다.

심 코치는 "4강이나 결승전 등 주목받는 경기가 아닌 예선 때부터 작업이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러시아 선수와 직접 맞붙는 경기가 아니라 위협적인 한국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와 경기할 때 불리한 판정을 내려 초반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판정 대비 훈련 중점…항의 매뉴얼도 OK"

물론 대표팀은 이런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펜싱 국가대표 조종형 총감독(서울시청)은 22일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경기 중 주지 않아도 주의를 준다든지 해서 미묘하게 판정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심리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조 감독은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끔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판정 항의에 대한 매뉴얼도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다른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펜싱 남자 에페 대표팀 정진선, 정승화, 박경두, 박상영(왼쪽부터)이 22일 미디어데이에서 리우올림픽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태릉=노컷뉴스)
이날 구본길은 "연습 경기를 할 때도 애매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점수를 주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리한 점수를 받고도 이를 이겨내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압도적인 경기력이다. 남자 사브르 이효근 코치(동의대 감독)는 "불리한 판정은 없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실력껏 뛰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역시 최고의 경계 선수는 러시아다. 이 코치는 "가장 1순위 경쟁 상대는 야키멘코와 코바레프"라면서 "독일과 루마니아 등 새롭게 떠오르는 선수들도 있지만 역시 러시아 선수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없다. 개인전만 열리는 만큼 메달이 절실하고 절박하다. 2014-15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 세계 1위를 달렸던 구본길은 "한국 남자 사브르 사상 올림픽 개인전 최초의 메달을 따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가장 좋은 것은 공정한 판정 하에 깨끗하게 승부를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펜싱계에서는 "동유럽 심판들은 가난하다"며 걱정하고 있다. 과연 한국 펜싱이 역경을 딛고 리우에서도 효자 종목임을 입증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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