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한 가운데는 8×1.5M의 면적에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 여자를 펼쳐, 조선이 '활자의 나라'였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왕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관리한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예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글자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작 기술도 정교하여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만드는 대신, 금속활자와 이것으로 인쇄한 책에 조선시대 예술과 기술을 집약시켰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활자나 책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전시 방식을 탈피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를 7개 주제로 나누어 소개함으로써, 조선시대 정치와 문화사에서 활자의 제작과 사용이 갖는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
또한 지난 수년간의 활자 정리와 조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활자들의 실체를 밝히고,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활자들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정조가 정리자(整理字)를 만드는 과정에 참고용으로 수입한 목활자를 공개한다. 이 활자는 청나라 궁중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13세기에 위그루 문자로 만든 활자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이다.
활자장들의 서랍 이곳저곳에 나온 기록과 조선시대 활자의 수량을 기록한 목록인 자보(字譜)를 대조하여 활자 보관 순서와 방식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활자들은 한자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줄여, 효율적으로 보관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획수가 아니라 자주 쓰는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로 나누어 보관했다. 이런 방식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선시대 활자를 다루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