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노컷 리뷰] 김수정 연출, '그러므로 포르노 2016'

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5개월간 매주 1편씩, 총 20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릅니다. CBS노컷뉴스는 연극을 관람한 시민들의 리뷰를 통해, 좁게는 정부의 연극 '검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모든 '검열'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그러므로 포르노 2016'.

공연을 보러 같이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제목을 보고 갸우뚱한다. 내가 ‘포르노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일체의 선입견 없이 작품을 보고 싶어서 사전에 정보를 알 수 있는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설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참가작이라는데, 저렴한 포르노 작품을 공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명백한 '포르노'였다. 도입부에서 배우 이종민이 설명한 그대로 ‘어떤 최우선의 목적을 가지고, 가려지는 것 없이 노출되며, 서사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길게, 많이,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사회적 포르노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포르노에 대한 나의 개념이 너무 작았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포르노 2016' 중. (사진=극단 신세계 제공)
엄마, 꿈, 폭력. 이 공연이 나에게 던져준 세 마디다.

극장에 입장하면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 주제가가 계속 울리고 있다. 불이 꺼지면 볼륨이 커지고 하니가 엄마를 그리며 무작정 달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이어서 등장한 8명의 배우들은 마치 객석에 있기라도 한 듯 간절하게 엄마를 찾다가 갑자기 엄마에 대한 바람과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엄마가 엄마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울컥하기도 하고 ‘엄마가 잔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후에도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암전 때마다 엄마들의 인터뷰 음성이 흘러나온다.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냐는 자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엄마들의 따뜻한 목소리가 폭력적인 장면들 사이를 달래듯 메워 준다. 공연이 끝나는 마지막까지도 엄마에 대한 부름은 계속된다. 그래,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건 엄마니까.

'그러므로 포르노 2016' 중. (사진=극단 신세계 제공)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의 꿈은 선생님에 의해 폭력적으로 재단되는, 그러니까 검열되는 것을 보여준다. 간호사가 꿈이라는 남자아이에게 그건 여자가 하는 거니까 네 꿈은 의사라고 수정해 주고, 모두 다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어린이에게 그런 건 꿈이 아니라며 폭력을 가한다.

친절과 폭력의 두 얼굴을 한 위선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면서, 꿈조차 내 맘대로 꿀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공연 마지막 즈음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며 울려 퍼지는 ‘아, 대한민국’ 노래에 밑바닥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는 실소를 터뜨렸다.

중간에 100초의 시간을 주며 '불편하면 지금 극장을 나가도 좋다'고 할 만큼, 공연 내내 폭력적이고 불편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가해지는 폭력, 또래들로부터 당하게 되는 왕따 폭력, 사회에서 선배로부터 당하게 되는 폭력들을 지켜보며 나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해 왔음을 새삼 기억해냈다. 더구나 여전히 그러한 폭력 아래에서 내 아이들이 성장해 가고 있음도 함께 깨달았다.

'그러므로 포르노 2016' 중. (사진=극단 신세계 제공)
연극은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하는 모든 폭력적인 언어들을 무대에 고스란히 쏟아낸다.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폭력까지 일상에서 당하고 있는 모든 폭력들을 지나치게 길게, 규칙적으로, 기계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이미 거대한 포르노 현상 속에 놓여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피해자일뿐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TV 속 어떤 뉴스도 외면한 채 걸그룹의 섹시한 댄스에만 반응하는 모습, 여성.성 소수자에게 알게 모르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모습이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포르노 2016' 중. (사진=극단 신세계 제공)
그 질문은 마지막에 관객들의 고민을 씻어 준다며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마셔대는 배우의 퍼포먼스에서 극대화된다. 객석에서 그만두라는 소리가 나오고서야 그 지루하고 괴로운 퍼포먼스는 끝이 난다.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 움직일 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받고 나서야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제 주먹으로 내치리는 가슴이 새빨개지도록 온몸으로 부딪히고 구르며 이 포르노 시대를 일깨워 준 배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은영 / 연극을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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