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포르노 2016'.
공연을 보러 같이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제목을 보고 갸우뚱한다. 내가 ‘포르노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일체의 선입견 없이 작품을 보고 싶어서 사전에 정보를 알 수 있는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설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참가작이라는데, 저렴한 포르노 작품을 공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명백한 '포르노'였다. 도입부에서 배우 이종민이 설명한 그대로 ‘어떤 최우선의 목적을 가지고, 가려지는 것 없이 노출되며, 서사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길게, 많이,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사회적 포르노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포르노에 대한 나의 개념이 너무 작았을 뿐이었다.
극장에 입장하면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 주제가가 계속 울리고 있다. 불이 꺼지면 볼륨이 커지고 하니가 엄마를 그리며 무작정 달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이어서 등장한 8명의 배우들은 마치 객석에 있기라도 한 듯 간절하게 엄마를 찾다가 갑자기 엄마에 대한 바람과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엄마가 엄마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울컥하기도 하고 ‘엄마가 잔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후에도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암전 때마다 엄마들의 인터뷰 음성이 흘러나온다.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냐는 자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엄마들의 따뜻한 목소리가 폭력적인 장면들 사이를 달래듯 메워 준다. 공연이 끝나는 마지막까지도 엄마에 대한 부름은 계속된다. 그래,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건 엄마니까.
친절과 폭력의 두 얼굴을 한 위선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면서, 꿈조차 내 맘대로 꿀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공연 마지막 즈음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며 울려 퍼지는 ‘아, 대한민국’ 노래에 밑바닥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는 실소를 터뜨렸다.
중간에 100초의 시간을 주며 '불편하면 지금 극장을 나가도 좋다'고 할 만큼, 공연 내내 폭력적이고 불편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가해지는 폭력, 또래들로부터 당하게 되는 왕따 폭력, 사회에서 선배로부터 당하게 되는 폭력들을 지켜보며 나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해 왔음을 새삼 기억해냈다. 더구나 여전히 그러한 폭력 아래에서 내 아이들이 성장해 가고 있음도 함께 깨달았다.
또한, 우리는 피해자일뿐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TV 속 어떤 뉴스도 외면한 채 걸그룹의 섹시한 댄스에만 반응하는 모습, 여성.성 소수자에게 알게 모르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모습이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전은영 / 연극을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